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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노 전 대통령을 대통령 묘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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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5-27 02:20 조회21,2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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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을 치를 장의위원회 쪽은 그의 장지로 봉하마을 선산을 택했습니다. 고향에 조그마한 비석 하나만 세워달라는 유지를 따른다는 뜻에서일 터이지요. 탈권위적이고 소탈했던 그의 마지막 뜻을 존중하는 것도 소중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이 결정은 재고했으면 싶습니다. 봉하마을이 아니라 국립현충원 대통령 묘역에 그를 모시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할 이유는 여럿 있습니다. 단순히 그가 개인 노무현이 아니라 대통령이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첫째 이유는 그가 정권의 ‘몰이 사냥’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희생자라는 점입니다. 그의 대통령 묘역 안치는 정권이 그에게 덧씌우려던 부패 혐의의 올가미가 무리한 것이었음을 인정하는 기표가 될 것입니다. 분향소 곳곳에 나부끼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라는 글귀가 정권과 그 하수인인 검찰 그리고 보수언론의 인격살인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다는 자성이라면, 역사의 재평가를 기다리기 전에 우리 손으로 그를 정당하게 복권시켜 정의를 회복하는 게 필요합니다. 물론 전국 곳곳에 만들어진 분향소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추모의 물결로 이미 그는 복권됐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만으론 불충분합니다. 우리 자신과 후대를 위한 기억의 장소가 필요합니다.

 

둘째로, 그의 대통령 묘역 안치는 민주정부를 이끈 대통령으로서 그가 이룬 치적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담는다는 의미도 지닙니다. 그것은 87년 이래 20년, 민주정부 10년의 역사가 잃어버린 역사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진전시킨 소중한 역사임을 확인하는 기억의 장소이기도 할 것입니다.

 

물론 그는 많은 한계를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지향하는 목표의 숭고함에도 불구하고, 집행하는 방식의 미숙함으로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권위주의 해체라는 대의를 위해 보수언론과 기득계층 등 적대적인 세력을 견제할 장치도 채 마련하지 않은 채 맨몸으로 맞서다 그들을 오히려 키워주는 우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집권 직후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말과 ‘검사스럽다’라는 말을 회자시켰던 ‘검사와의 대화’가 바로 그 상징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그의 정부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민주적이고 탈권위적인 정부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민주정부 10년 사이에 성장한 젊은 세대들이, 광장을 틀어막고 검경의 물리력으로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위협하는 현 정권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현실이 그를 역설적으로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남북문제는 또 어떻습니까?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아붙이며 정권교체를 공언한 미국의 부시 정권과 북한이 치열하게 맞서는 상황에서도 햇볕정책의 기조를 허물지 않으며 꾸준히 대북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남북문제에서 상당한 정도로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김대중 정부에서 이룬 남북관계의 진전을 인정하고 포용적인 대북정책을 취했더라면 개성공단 사태와 2차 핵실험이란 오늘의 위기도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를 대통령 묘역에 안치해야 할 이유는, 그의 실패가 밉다는 핑계로 이 땅의 주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했던 올바른 판단을 회피해 역사의 퇴행과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란 비극을 낳은 우리의 무책임한 행위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은 기억의 장소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시민 분향소가 차려진 대한문 앞 시청역 층계 옆에 한 법대생이 남긴 글처럼 “못다 이루신 꿈, 이제는 모두 저희 몫”이니까요.

 

권태선 논설위원

(한겨레. 2009.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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