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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식] 중형국가의 국제적 공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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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6-26 13:19 조회24,0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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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실무회담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은 게 그래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 한숨이 나오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이 지경이 되도록 실타래를 엉클어놓은 이명박정부도 한심하지만 남한은 안중에 두지 않은 채 미국만 바라고 벼랑끝 전술을 끝없이 구사한 북의 태도도 한탄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왜 우리는 이 모양인가? 얼마전 다녀온 남경의 미령궁(美齡宮)이 떠오른다. 장개석(蔣介石) 부인 송미령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 오래된 별장(1931년 건립)에는 그녀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하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국민당 정부 퍼스트 레이디의 업적을 이처럼 생생히 보고 들을 줄이야! 그녀의 일생을 재구성한 다큐필름 돌리는 방에 앉아 나는 적과 동지의 이분법으로부터 관대한 중국의 유구한 전통을 생각했다. 평양에서 남의 지도자를 기리는 다큐를 무심히 볼 날은 언제일까? 그 역은 또 언제인가? 약자의 위치로 떨어진 북이 경직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로대 이미 우위에 오른 남한에서도 소위 색깔논쟁이 여전히 난무하는 걸 보면 솔직히 중국이 부럽기도 하다. 적과 동지의 이분법이 부활하고 남북관계가 다시 경화되는 과정에서 아뿔싸! “한반도문제가 한반도를 떠나고 있는 중이다.”(이일영)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된 데 이어, 다음달에는 미․중․일 3자 정책대화가 워싱턴에서 열린다는 보도다. 북에 대해 각별하면서도 혹 미국과 손잡지 않을까 내심 우려하는 중국이 미국과 함께 제재에 동참한 것은 유의할 대목이다. 그렇다고 북․중관계가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고 호들갑떨 일은 물론 아니지만, 결의안에서 손발을 맞춘 중국과 미국이 이어서 3자회담으로 진화하는 걸 보면 결의안 이전의 북․중관계와는 일정한 차이를 보일 것은 거의 분명하다 하겠다. 서로서로 의심하는 세 대국이 웬일로 “둘만 참여하던 파티에서 셋이 참여하는 협상”의 한 테이블에 모여앉는가? 확실히 한반도, 좁게는 북의 운명에 관한 깊숙한 얘기가 오갈 것이다. 대한제국이 지도에서 지워지던 백년전의 재판(再版)이 될지 모른다고 과도한 상상을 구사할 일은 물론 아니다. 한국이 배제된 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음에도 다시 생각하면 미․중․일 세 나라의 협력이 한반도의 운명에 꼭 나쁜 영향만 미치리라고는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3이 황금분할이기도 하지만 한반도의 남과 북이 왕년의 졸(卒)은 아니란 점을 감안하면 이 국면을 대담하게 활용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요컨대 남과 북, 아니 우리가 먼저, 할 나름을 찾는 것이 종요롭다.

 

  안팎의 우환 속에 진행되는, 한반도문제에 대한 한반도의 배제를 극복할 길은 어디에 있는가? 라틴아메리카 중심의 70년대 제3세계론을 수정하면서 출현한 동아시아론을 이제 다시 제3세계적 의식 아래 재구성할 시점인데, 다시 말하면, 미․중․일만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잠깐 거두고 좁혀서는 동아시아, 넓게는 아시아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한때 어깨를 나란히하고 아시아국가 자본주의 불임론을 깬 ‘네 마리의 용’(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 그리고 반목을 그치지 않는 동북아 3나라(한․중․일)를 고맙게도 초청하여 지역협력의 가정교사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폴, 베트남, 브루나이,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은 그 가운데서도 핵심이 아닐 수 없다. 대국과 소국의 중간에 서서 침묵당한 소국들의 입장에 성심으로 다가선다면 이야말로 중형국가의 보람이 아닐 수 없다. 금번 금융위기로 가뜩이나 심각한 아시아의 빈부격차가 더 격화되었다 한다. 나라 안에서도 빈부격차가 결국 나라 전체의 발전을 가로막듯이 지역 안의 국가들 사이의 빈부격차도 지역의 공동번영을 저해하리라는 점에 한국이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더구나 그 나라들에서 한국의 역할에 기대를 거는 기운도 적지 않다면 더욱이나 그렇다. 한국은 북을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다. 평화공존을 근본에서 저지하는 남북의 격차 심화문제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역내 문제에 대한 더욱 적극적 관여가 요구되거니와, 이것이야말로 남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의 한 표본이 될 터이다. 중형국가에 걸맞은 국제적 공헌 모델을 동아시아 또는 아시아에서 알맞춤하게 찾아 실천하는 길을 제대로 닦는다면 한반도문제의 탈한반도화라는 최근의 답답한 흐름을 저지하면서 이 사활적 문제에 대한 우리의 관여를 차츰차츰 높일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최원식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서남포럼 운영위원장)

(서남통신. 20009.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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