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제] 작은 관심이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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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2-12 20:33 조회20,95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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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지하철에서 우연히 제자를 만나 동승하게 되었다. 학생이 최근 겪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서울 시내 어느 지하철역 구내에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자기 앞에서 걷고 있던 노인이 쓰러졌다고 한다. 그분은 의식을 잃었고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와 바닥을 흥건히 적실 정도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누구 하나 돕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어떤 남학생이 침착하게 그 노인을 살펴보고 전화를 걸어 구급요원을 부른 거예요. 너무 고맙더라고요.” 어느 학생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다행이었지만 군중들 속에서 딱 한 사람만이 필요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이 사례는 사회심리학에서 ‘방관자 효과’라고 이르는 것을 판박이처럼 닮았다. 관찰자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부인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방관자로 행동하는가 하는 질문은 우문에 가깝다. 실제로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기 쉽기 때문이다. 방관자가 오히려 정상인 셈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왜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가? 이 질문의 고전적인 사례로 2차 대전 당시 유럽의 나치 점령지에서 목숨을 걸고 수배자들을 도왔던 사람들을 들 수 있다.
에바 포겔만이라는 학자가 나치 시대에 자기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을 도왔던 사람들을 심층 조사하여 <양심과 용기>라는 책을 냈다. 그런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그 사람들은 영웅적이지 않았고, 자기 스스로 대단히 희생적인 행동을 한다는 의식도 없었다. “그 상황에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고 했고 “누구든 그 자리에 있었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 사람은 곤경에 빠진 타인을 외면할 능력이 없었다. 상식적으로 인간적 품위에 맞게 행동하고 그런 상황에서 타인을 돕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생각하며, 당연히 그래야 하므로 그렇게 처신하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와 가족 내에서 배우고 실천했던 일상적인 도덕성을 타인에게도 계속 행하는 특징을 보였다. 특히 이들은 어떤 추상적 도덕이나 정치적 의제에 매달리기보다 자기 자신이 어떤 인간인가 하는 자아 정체성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을 포겔만은 ‘선의 평범성’이라고 일컬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새길 수 있다. 우선, 이 험한 세상에서 꼭 필요한 일이 의외로 상식적인 수준의 행동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방관과 무관심은 중립이 아니라 적극적인 해악이다. 반대로, 작은 관심과 배려가 세상을 크게 바꿀 수 있다. 셋째, 인간의 고통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초보적 수준의 휴머니즘이 중요하다. 넷째, 사상이니 제도니 이념이니 하는 것 이전에 타인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조건반사적으로 일단 돕고 보는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 우리 공동체를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교육 목표일 수 있다.
요즘 깊이 생각하는 많은 이들이 용산 참사와 민주노총 사건을 이 시대 심각한 병리현상의 징후로 받아들이고 있다. 용산 참사의 경우, 그런 엄청난 사건임에도 대중들의 상대적인 무관심과 방관자적인 자세, 그리고 그것을 부채질하는 권력과 언론의 비인간성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총의 경우, 큰 구호 속에 매몰된 최소한의 상식적 인간 배려의 부재 그리고 관련자들이 인간의 고통 앞에서 방관자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두 사건은 우리 사회의 단추를 어디서부터 다시 끼워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09.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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