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일 외] '실업대란' 대안 있나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3-14 10:44 조회20,588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ㆍ“임금삭감보다 근로시간 줄여 일자리 창출을”
경기침체에 따른 고용악화가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1월 취업자 수가 10만명 넘게 감소하고, 자영업자와 임시·일용근로자들은 38만명 가까이 줄어드는 등 고용대란이 현실화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 4일부터 ‘일자리가 사라진다’ 기획 시리즈를 통해 고용한파에 시달리고 있는 서민들의 실태를 짚어본 데 이어, 지난 12일 고용대책의 대안을 모색해보는 전문가 좌담회를 마련했다. 좌담회에는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 등이 참여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왼쪽)와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운데),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이 12일 경향신문 회의실에서 최근 고용대란 실태와 이명박 정부 고용정책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정지윤기자
참석 전문가들은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 확대와 청년 노동할당제 도입, 사회안전망 확충 등 획기적인 대책을 통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일방적인 임금삭감식 ‘잡셰어링’(일자리 나누기)은 실효성도 없을 뿐 아니라 국민통합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회(서의동 경제부 차장) = 고용사정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실업대란을 넘어 ‘고용 빙하기’로 접어들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 = 참여정부 때인 2005~2007년에 일자리는 한 해에 30만개씩 늘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일자리 60만개를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는데 지난해에는 10만개 정도 증가하는 데 그쳤고, 최근에는 마이너스로 돌아선 상황입니다. 지난 1월 상용 근로자는 증가한 반면 자영업·임시직·일용직 등 노동취약 계층은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이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고 있는 셈입니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일반적으로 경기가 나빠지면 취약계층이 가장 먼저 피해를 보고, 소득분배도 악화되게 마련입니다. 자영업과 임시·일용직 근로자들은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마련이 중요하다고 계속 지적돼 왔지만 아직까지도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급속한 고용악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L자형’ ‘W자형’ 경기침체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실업률은 3.6%이지만 잠재실업·실망실업 등에 해당하는 인원이 350만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잠재적 실업자까지 포괄하는 고용대책이 필요합니다.
사회 = 정부의 고용대책은 잡셰어링과 청년인턴제 도입, 건설·토목 분야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한 ‘불안정 일자리’ 늘리기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유선 = 잡셰어링의 본래 의미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은 온 데 간 데 없고, 임금삭감만 얘기되고 있습니다. 또 임금을 삭감해 일자리를 얼마나 만들겠다는 것도 명료하지 않습니다. 이번 기회에 노동자들의 임금만 깎고 보자는 것 같습니다.
이병훈 =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잡셰어링은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유럽의 사례들을 보면 노동시간을 줄이는 타협을 먼저 하고,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감소를 노동자들이 그대로 수용할지, 기업과 절반씩 부담할지, 정부가 보전할지 등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먼저 임금부터 삭감한 뒤 그렇게 만들어진 기금으로 인턴 등 한시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땜질’에 그치고 있을 뿐입니다.
유종일 =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금모으기의 정신이 잡셰어링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말했지만 금모으기 운동 때 나타났던 국민적 감동과 자발적 참여가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정부가 기업들에 ‘임금을 너무 많이 받아서 문제’라는 식으로 ‘마녀사냥’하듯 몰아세우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죠.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대기업의 대졸 신입사원 초임이 너무 높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초임은 대기업들이 올린 것입니다. 대기업에 편중된 왜곡된 경제구조가 심각한 임금격차로 나타난 것인데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 없이 밀어붙이기만 하니 어떻게 자발적인 고통분담과 국민통합을 이끌어내겠습니까. 케인스는 <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서 “경제가 나빠졌을 때 임금을 깎는 것은 최악의 정책”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수요를 늘려야 하는데 임금을 깎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병훈 = 노동정책의 새판짜기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장시간 근로체제를 유지하다보니 지난 10여년간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됐고, 경제위기까지 겹쳐 고용문제가 심화됐습니다. 단기적인 실업대책에 그치지 말고, 장시간 근로체제에서 탈피하려는 근본적인 문제를 담론화해야 합니다.
유종일 = 한 자동차회사 임원이 노조가 파업 직전 준법투쟁을 하며 갈등이 첨예화될 때 생산된 차와 쟁의가 타결된 뒤에 생산된 차 가운데 어느 쪽 차가 품질이 좋은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노사갈등이 끝난 뒤 만든 차가 훨씬 잘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반대라고 합니다. 준법투쟁으로 적게 일하며 맑은 정신으로 만든 제품이 파업이 끝난 뒤 밀린 생산량을 잔업으로 채우며 만든 제품보다 품질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근로시간 단축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언제까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만 의존할 것인지도 고민해봐야 합니다.
사회 = 정부는 비정규직 근로자 고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내용의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김유선 = 2007년 7월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 이후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비율은 55%에서 52%로 3%포인트 줄었습니다. 경기가 나빠지며 비정규직이 먼저 해고당한 것도 있겠지만 정규직 전환도 상당 부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정부는 이런 점은 외면한 채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겠다고 합니다. 정부는 이 조치가 비정규직의 대량해고를 막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경기가 나쁘면 비정규직부터 해고하고 있습니다. 고용기간이 2년이라고 해서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더 자르고, 4년이라고 해서 덜 자를지 의문입니다.
이병훈 = 이번 고용대란 전에도 우리 사회는 ‘노동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을 맞고 있었습니다. 비정규직이 양산되면서 정규직·비정규직 간 양극화의 골이 깊어졌던 것이지요. 정부는 지난 10년간 진행돼온 이 문제에는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유종일 = 기업 입장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 수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만 접근하면 ‘제 발등 찍기’가 될 뿐입니다. 우리나라가 가진 경쟁력은 인적자원뿐입니다. 우리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 속에서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은 (비정규직 양산과 그에 따른 생산성 저하로) 경쟁력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사회 = 고용대책은 경제전망에 맞춰 추진돼야 하는 것 아닙니까.
유종일 = 경기가 나쁘니 일자리가 없어져 내수가 위축되고, 그래서 기업들이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정부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과 이를 위한 사회적 타협, 제도적 개선을 통해 일자리를 최대한 지켜 내수경기 위축을 막아야 합니다. 경기를 희망적으로 전망하는 이들도 미국 경제가 연말까지 침체될 것으로 보고 있고, 우리 경제는 미국보다 침체가 늦게 시작돼 회복이 더 늦어질 수 있습니다. 일자리 대책을 소나기 피하기식으로 해결해서는 안됩니다.
이병훈 = 정부가 경제 주체들에게 경제전망을 솔직하게 밝히면서 위기극복을 위해 힘쓰자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탓에 금 모으기 때와 같은 국민적 열기를 끌어내기는커녕 오히려 식히고 있는 것이지요.
김유선 = 정부가 ‘일자리가 사라져 큰 일’이라면서도 공공부문 일자리는 줄이고 있습니다. 공공부문 일자리에서 줄여야 할 부문도 있겠지만 그것도 시기를 가려야 합니다.
유종일 = 공공부문 가운데서도 사회복지 서비스에 필요한 인원은 부족합니다. 공공부문에서도 지킬 부문은 지켜야 합니다.
사회 =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이병훈 = 정부가 고용정책에 대해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사회안전망 확충을 고용대책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정부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을 때 생계를 책임져줄 수 있는 틀을 강구해야 합니다.
유종일 = 경제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큰 만큼 나쁜 상황을 가정하고 위험관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기부양책도 가장 효과가 높은 분야에 집중해야 합니다. 부유층 감세나 토목사업 같은 정책은 아주 효과가 나쁜 쪽으로 재정을 투입하는 것입니다. 학교 급식시설 확충 등 사람에 대한 투자, 미래에 대한 투자 위주로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해야 합니다.
김유선 = 대졸 미취업자들의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16조원 감세할 돈으로 일자리를 만들면 연봉 2000만원짜리 일자리 80만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로제타 플랜과 같은 청년고용할당제 도입,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워크셰어링도 필요합니다. 실업급여 대상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용보험 가입 인원이 900만명 정도밖에 안되고 이들 중에서도 실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500만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청년 실업자와 자영업자 등도 직업훈련을 받는 조건으로 실업급여를 지급해야 합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적극 추진해야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시리즈 끝>
(경향신문. 2009. 3. 1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