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근]기도하겠다, 사람의 일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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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11-07 15:10 조회4,15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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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업재해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4분의 1 수준이다. 반면 산재사망률은 수십년간 1위를 다툰다. (…) 산재가 적은 게 아니고 신고를 못 해서다. 별도 매뉴얼에 따라 처리한다는 의심을 사는 이유다. 다만 사망의 경우는 이렇게 은폐하기 어렵다 보니 산재사망률은 최고다. ‘케이(K)-산재’의 참혹한 실상이다.
이 칼럼 게재일은 11월2일, 수요일. 마감기한은 사흘 전인 일요일 정오다. 삽화를 준비하는 데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그 뒤 주제 변경은 안 된다. 마감을 앞둔 10월30일 아침, 나는 당혹스럽다. 산업재해를 주제로 글을 쓰던 지난밤 자정께, 무심히 켠 인터넷 포털에 속보가 뜨고 있었다. 서울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서 벌어진 참사 소식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글자도 못 썼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내가 죽음 이야기를 쓰고 있던 그때 수많은 젊은이가 실제로 죽고 있었다. 사건의 실상을 모르는 채 이태원 이야기를 쓸 수도 없다. 이 칼럼을 어떻게 마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참담하다.
이태원의 꽃 같은 젊은이들을 생각하며, 꾸역꾸역 또 다른 죽음들에 관해 쓴다. 지난 10월15일 새벽 6시15분, 파리바게뜨 브랜드 등을 보유한 에스피씨(SPC) 계열사 에스피엘(SPL)의 제빵공장에서 23살 여성, 박아무개씨가 숨졌다. 샌드위치 소스를 섞는 교반기 작업 중 앞치마가 끼였다. 기막힌 전후 사정들이 보도로 이어졌다. 12시간 맞교대의 밤샘근무 중이었다. 날개가 돌아가는 위험한 공정이라 덮개를 덮어야 하지만, 그러면 속도가 안 난다며 교반기 9대 중 7대에 아예 덮개가 없었다. 2인 1조라지만 사고 당시 나머지 한명은 다른 작업 중이라 도울 수 없었다. 비상멈춤 스위치는 기계 본체가 아니라 별도 동력장치에 달려 있었다. 안전교육은 거의 실시하지 않은 채 서명만 받아왔다. 회사는 동료가 막 죽어간 기계에 천만 씌운 채 작업을 계속하게 했다. 다음날엔 해외지점 개점 소식을 언론에 뿌렸고,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이 열심히 받아썼다. 무참한 이야기들이 더 많다. 그만하자.
박씨를 발견한 동료들은 6시17분 119가 아닌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현장관리자는 6시26분 119에 신고했다. 사고 11분 뒤였다. “전에 직원이 쓰러졌을 때 동료가 119신고를 먼저 했다가 난리가 난 적이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 공장 노동자들은 작업 때 휴대폰을 소지할 수 없다.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온 강동석 에스피엘 대표이사는 “너무 다급한 상황이라 경황이 없어 사고자를 구조하려는 활동이 먼저 진행된 것으로 안다”며 사고 때 “비상 매뉴얼은 있지만 정확하게 답변드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그 매뉴얼은 어떤 것일까?
119신고는 한국 산업재해의 참상을 은폐하고 폭로하는 열쇳말이다. 지난해 4월22일, 평택항 신컨테이너터미널 안 수출입화물보관창고 앞에서 이선호(23)씨가 사고로 숨졌을 때도 그랬다. 사고 뒤 직원들은 119가 아니라 회사에 연락하고 지시를 기다렸다. 이씨는 수십분간 방치됐다.
119라는 숫자는 한국 산업재해 통계의 미스터리를 설명해준다. 산재사망률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막상 산업재해율은 매우 낮다는 수수께끼 말이다. 한국의 산업재해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4분의 1 수준이다. 반면 산재사망률은 수십년간 1위를 다툰다. 해마다 2천명 이상이 산재로 죽는다. 매일 5~6명꼴이다. 통계대로라면 결론은 이렇다. 한국은 산업재해가 매우 적은 나라지만, 일단 일어났다 하면 심각해서 사망률은 최고로 높다. 미스터리 같지만 해답은 어렵지 않다. 산재가 적은 게 아니고 신고를 못 해서다. 별도 매뉴얼에 따라 처리한다는 의심을 사는 이유다. 다만 사망의 경우는 은폐하기 어렵다 보니 산재사망률은 최고가 된다. ‘케이(K)-산재’의 참혹한 실상이다.
2021년 1월26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자본의 반발과 정치권의 미온적인 태도로 원안에 비해 많이 약화됐다. 지난 1월27일부터 시행됐다. 이틀 뒤 삼표산업 양주 채석장에서 붕괴사고로 노동자 세명이 토사에 매몰돼 숨졌다. 중대재해처벌법 1호 사건이다. 지난 6월, 노동부는 대표이사 등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등기이사가 아닌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은 입건조차 하지 않았다. 에스피씨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허영인 회장 역시 대표이사도 등기이사도 아니다. 그는 안전할 것이다. 하긴 증거인멸 시도까지 드러난 삼표산업 사건도 검찰에서 기약 없이 표류 중이다.
이렇게 허약한 법조차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집요하다. 기획재정부는 ‘안전보건 최고책임자’가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해 최종결정을 할 수 있다면 경영책임자로 본다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바지’ 안전책임자를 세우라는 가이드다.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은 법무부 장관이 정하는 중대재해 예방기준을 인증받은 기업에 대해서는 경영책임자 처벌 형량을 줄이거나 면제하자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정권의 진심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기업주의 안전에 관한 것이다.
그들이 안전한 세상에서 날마다 노동자들이 죽어나간다. 최근 발생한 사망 사고들이다. 일부만 추렸다.
10월26일 붕괴 사고가 난 경북 봉화 아연광산의 광부 조장 박아무개(62)씨와 보조작업자인 또 다른 박아무개(56)씨가 지하 190m 지점에 매몰된 채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부디 성히 돌아오시길. 신이 있다면 왜 세상을 이리 만들었는지 묻고 싶은 날이다. 따지면서도 매달리고 기도하고 싶은 날이다. 그리고 사람의 일을 따지자. 잊어서도 묻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사람의 일을 하자.
조형근 사회학자
한겨레 2022년 11월 1일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652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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