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욱연]먼저 군자가 되는 한국인, 먼저 소인이 되는 중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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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03-06 17:24 조회3,40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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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할아버지가 망태 같은 데에 달걀을 놓고 팔고 있었다. 한 줄 살 생각이었는데, 달걀을 줄이나 판으로 쌓아놓은 게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사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그냥 얼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한 근에 얼마라고 했다. 달걀을 근으로 떠서 파는구나! 그렇게 달걀 한 근을 샀다. 중국에서 한 근은 500 그램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달걀만 근으로 떠서 무게에 따라 값을 매기는 게 아니었다. 민물고기도 그랬고, 오이도, 고추도, 수박도, 참외도 그랬다. 수박 크기가 얼마나 차이가 난다고 그러느냐고, 그냥 같은 값을 받으면 되지 유난이다 싶기도 했다. 내게는 하나에 얼마라고 하면 모를까, 1근에 얼마라고 하면 한 통에 얼마인지 쉽게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중국인이 원래 이렇게 꼼꼼하고 철저한가? 아니다. 중국이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산문이 있다. 「대충대충 선생전(差不多先生傳)」이라는 산문이다. 중국 근대를 대표하는 지식인 후스(胡適)가 1919년에 썼다. 대충대충 선생의 삶의 철학은 ‘대강대강’, ‘대충대충’, ‘그거나 이거나 마찬가지’이다. “만사 대충대충 하면 되는 거지, 뭘 그리 꼼꼼하게 따져.”라는 생각으로 평생을 산다. 한번은 그의 어머니가 흑설탕을 사 오라고 시켰는데 흰설탕을 사 왔다. 어머니가 꾸중하자, 그가 이렇게 말한다. “흑설탕이나 흰설탕이나 그게 그거지 아녜요”라고 말한다. 그러다가 그가 병이 났다. 원래는 유명한 왕(汪) 선생을 모셔오려고 했는데, 찾지 못해서 발음도 비슷하고 한자가 비슷한 다른 왕(王) 선생을 모셔왔다. 발음이나 한자는 비슷해도 의사 실력은 전혀 다른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실력이 떨어진 왕 선생에게 진찰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 왕 선생이나 이 왕 선생이나 마찬가지이지 뭐. 비슷하잖아.” 결국 그는 병으로 죽게 된다. 죽을 무렵, 그가 이렇게 말한다. “사는 거나 죽는 거나 그게 그거지 뭐.” 이 산문은 후스가 모든 일을 대충대충 하고 꼼꼼하지도 철저하지도 않은 중국 민족성을 비판하려고 썼다. 한국인 중에도 후스가 비판한 중국인의 성향을 경험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특히 중국에 공장을 짓고 중국 종업원을 고용해 본 한국 기업인 중에는 중국 노동자들이 일을 꼼꼼하게 챙기지 않고 대충대충 하는 것 때문에 고생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박 하나, 달걀 하나도 저울로 떠서 꼼꼼히 셈을 하는 중국인과 ‘흰설탕이든 흑설탕이든 그게 그거지’라고 생각하면서 대충대충 하는 중국인, 둘 중 어느 쪽이 중국인의 참모습일까? 둘 다 중국인의 참모습이다. 두 가지 태도의 차이는 이익과 돈에 관련된 것이냐 그렇지 않으냐에 달려 있다. 돈과 이익에 관련된 일이라면 중국인은 더없이 셈이 철저하고 꼼꼼하다. 이익과 돈 앞에서 대충이란 없다. 반면에 돈이나 이익에 상관없는 일에는, 더구나 나와 친분 관계가, 특히 중국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와 네트워크, 즉 ‘꽌시’가 없는 경우에는 대충대충 하는 성향이 있다. 중국인은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은 이익 때문에 만나지만, 반대로 이익 문제 때문에 관계가 틀어진다고 생각한다. 서로 이익을 나누어야 관계가 지속되고, 이익 문제를 분명히 해결해야 소중한 사람이나 절친한 사람과 관계가 틀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하거나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자기 이익을 꼼꼼하게 따진다는 차원에서 보자면 중국인은 소인이다. 이익에 따라 행동하고 이익에 따라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중국 속담에 “친형제라도 셈은 분명히 한다(親兄弟, 明算帳)”는 말이 있다. 형제 사이에도 돈 문제를 확실히 계산한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그렇다. 전통 시대에도 중국은 부모가 재산을 물려줄 때 큰아들, 둘째 아들 상관없이 모든 자식에게 똑같이 균분해 주었다. 이렇게 재산을 균분하여 상속하게 되면 자식들은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계약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큰아들 위주로 재산을 물려주고, 형제 사이, 부모 자식 사이에 무슨 돈을 따지냐고 생각하는 우리와 다르다. 공자는 '논어'에서 ‘소인은 이익에 밝고 군자는 의에 밝다’고 했다. 이 기준에 따르자면 중국인은 소인이다. 그렇다면 중국인은 군자이기를 포기하는가? 물론 소인 자체가 목적이거나 늘 소인으로 사는 중국인도 많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먼저 소인이 되고 나중에 군자가 되는 것, 아니 나중에 군자가 되기 위해서 먼저 소인이 되는 것을 추구한다. 선소인 후군자(先小人, 後君子)를 추구하는 것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소중한 인간관계를 잘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 먼저 돈과 이익을 꼼꼼히 따지는 소인이 되는 것이다. 간혹 이익과 돈을 먼저 말하고 그것을 먼저 생각하는 중국인에게 정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한국인이 많은데, 그것은 중국인의 이런 성향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어떤가?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 비지니스포스트 2023년 2월 17일 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306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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