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렬]탈원전을 난방비 폭탄과 연결하는 무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03-06 18:04 조회3,575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文정부는 탈원전을 한 적이 없다
[이투뉴스 칼럼 / 이필렬] 난방비 폭탄 책임 공방이 치열하다. 문재인 정권에서 가스 요금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부터,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는 말도 종종 들린다. 그런데 가스요금을 인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지만, 탈원전을 난방비 폭탄과 연결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난방비 폭탄이 정부의 가스공사 요금 인상 허용 때문이고 그 폭이 컸기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지금 이 시점에 단번에 크게 인상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 정부는 공사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에 문재인 정부에서 가스요금 인상을 억제했고 탈원전을 추진한 탓이라는 전정부 책임론이 빠지지 않고 덧붙여진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에서는 탈원전을 한 적이 없다. 초기에 탈원전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했을 뿐 실행한 것은 전혀 없다. 신고리 5,6호기 (새울 3,4호기) 공사를 영구히 중단했다면 탈원전을 실행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사는 잠시 중단되었다가 재개되어 앞으로 1년여 후면 2기 모두 완공될 예정이다. 정부나 여당에서는 문재인 정권의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 폐쇄가 탈원전 정책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두 원전의 폐쇄는 이미 수명이 만료되었거나 낡고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다른 정부에서도 당연히 이루어졌어야 할 것이었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탈원전을 하지도 않았지만 제대로 된 탈원전 정책을 수립한 적도 없다. 그렇게 해보겠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탈원전 정책을 수립한다는 것은 모든 원전을 길어야 30년 정도, 한세대가 지나가기 전 어느 시점에 폐쇄하겠다는 것을 결정하고 세부 시행계획을 하나하나 세워나갈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의 독일이나 스페인 또는 가까운 타이완 같이 탈원전을 선언한 국가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10년이나 20년 안에, 멀어야 2035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한다는 결정을 공표한 것이었다. 이에 반해 문재인 정부는 폐쇄 시점을 발표한 일이 없다. 탈원전 선언은 했으니 그 시점은 아마 건설 중인 원전이 완공되어 60년 정도 가동된 후, 대략 2090년 정도로 추정될 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먼 시점에 폐쇄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되고 그 사이에 건설중인 대형 신규 원전이 계속 들어설 것이니 탈원전이 가져올 문제들의 해결책에 대해 심사숙고할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야당의 반발과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커다란 벽에 부딪히자 탈원전이라는 말은 소리없이 없애버리고, 그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중심 단어로 탄소중립을 내세웠다.
문재인 정부에서 탈원전도 없었지만, 설령 그러했다 해도 난방비 폭탄이 탈원전 때문이라는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가는 문재인 정부 5년간 원자력발전소의 전기 생산량이 7%가량 증가했고, 원자력의 비중도 29% 정도로 그 전에 비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통계가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도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 탓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지점에서 여러 추측이 등장한다. 그 중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가스공사의 민영화를 위한 준비 작업이라는 추측이다.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가스 공급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가스공사를 설립한 이유는 정부에서 가격을 통제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가스라는 에너지를 시장에만 맡겨두었을 때 발생할 문제를 방지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작년 9월 가스 소매 가격이 그 전해 9월에 비해 7배나 올랐다. 시민들이 난방비, 전기요금 폭등, 이로 인한 물가 상승으로 아우성치고 기업이 파산하는 일이 속출했다. 정부에서는 이로 인한 고통을 경감해주기 위해 막대한 비상예산을 편성하여 진화에 나섰다. 만일 독일에서 가스와 전기 수급을 시장에만 맡기지 않고 정부에서 설립한 공사를 통해 적극 개입했더라면 이러한 비상 조치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한국의 가스 수급이 공공 기업체인 공사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한 이유는 바로 독일 같은 나라에서 발생하는 가스 대란과 난방비 폭등을 관리하기 위해서이다. 현 정부는 이 점을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이투뉴스 2023년 2월 6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