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경]형평사 100년, 차별과 인권을 되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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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05-30 15:34 조회3,15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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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인 1923년 백정(白丁)에 대한 차별에 맞선 형평운동(衡平運動)이 전면화하기 시작했다. 그해 4월25일 경상남도 진주에서는 조선형평사(朝鮮衡平社)가 창립되었다. 조선형평사는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고 애정은 인류의 근본 강령이며, 계급을 타파하고 모욕적 칭호를 폐지하며 교육을 장려하여 우리도 참다운 인간이 되는 것을 기대”한다는 설립 목적을 내세웠다. 이어 5월20일 전북 김제에서 창립된 서광회(曙光會)는 “백정! 백정! 부합리의 대명사, 부자연의 대명사, 모욕의 별명, 학대의 별명인 백정이라는 명칭하에서 인권의 유린, 경제의 착취, 지식의 낙오, 도덕의 결함을 당하여 왔다”고 선언했다. 1926년의 형평사 선언에는 “인생은 천부불가침의 자유가 있다. 인격과 자유를 억압된 자에게 어찌 생의 의의가 있으랴!”는 외침과 함께 인권 해방을 근본적 사명으로 한다는 강령을 담았다.
조선에서 가장 차별받던 계층인 백정들이 스스로 사회운동을 시작하고, 전국적인 조직을 결성하여 차별의 철폐와 인권의 증진을 도모했던 형평운동이 소환하는 기억은 뜨겁고도 강렬하다. 갑오개혁(1894~1896) 이후에도 여전히 호적에 따로 표시가 이루어졌을 만큼 이들에 대한 차별은 체계적이었다. 만인의 평등을 내세우는 기독교 교회에서조차 종종 함께 예배보기를 거부당했으며, 학교에 입학해 신학문을 공부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백정 중에서도 도축업에 종사했던 백정들에 대한 차별은 깊었다.
이들의 저항인 형평사 100년을 기념하여 국사편찬위원회는 학술회의를 개최하였고, 형평사가 처음 결성된 진주에서는 국립진주박물관 특별전 <공평과 애정의 연대, 형평운동>을 통해 형평운동을 재조명하고 있다. 우리 시대가 형평운동을 기억하는 방식은 신분 차별이라는 봉건적 굴레를 철폐하고 근대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실현하는 과정이었으며, 다양한 사회단체 및 일본의 평등운동인 수평운동과의 국제적 협력과 연대까지도 이룩했던 선도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보다도 25년이나 앞서 이루어진 인권운동임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형평운동의 서사는 아름답고 교훈적이다. 평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낙후된 사회와 투쟁하여 근대적 사회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했고 이 운동에 반대한 사람들은 모두 차별의식 때문일 뿐 양반 중에서도 선각자는 처음부터 이 운동에 함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만 이야기 해서는 현실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고 애정은 인류의 근본 강령”이라고 하지만, 무엇이 공평함이고 인간이 서로 애정에 기초한 연대를 통해 만들어내는 차별 없는 사회란 어떤 것인지는 결국 따져보면서 실현해가야 할 과제이지 그 이상만으로 힘이 되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형평운동은 낡은 계급의 철폐를 내세웠지만, 이때의 계급은 당시의 사회주의 운동이 말하던 무산·유산 계급의 계급과는 반드시 같은 의미는 아니었다.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백정들은 사회의 가장 빈곤한 계층도 아니었다. 백정 중에는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자산을 축적한 계층부터 일반 소작농들보다는 생계에 여유가 있는 계층, 빈곤한 계층이 혼재되어 있었다. 따라서 일부 노동자들이 신분에 대한 차별의식 때문에 형평운동에 반감을 품은 것도 사실이고, 백정을 자신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보아 충돌을 빚은 예도 있었다. 또한, 형평운동의 일부 세력은 도축업을 둘러싼 이권에 치중하거나, 연대와 투쟁보다는 계몽을 통한 협력적 노선을 추구하기도 했다. 신분이라는 이름의 계급을 철폐하는 운동과 새롭게 등장하는 무산 계급의 운동은 서로 연대를 모색했지만 쉽지 않았고, 이러한 갈등은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봉합될 수는 없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은 형평사를 둘러싼 갈등이 형평운동의 한계는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형평운동 당시 차별을 둘러싸고 벌어진 현실 속의 역동에서 교훈을 찾기보다는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권이라는 정답의 기원으로 투쟁의 역사를 박제화하는 습관이다. 형평운동 속의 다양한 흐름과 갈등, 하나의 차별을 바로잡으려는 운동이 현실세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다른 운동과 빚게 되는 충돌은 형평운동의 역사를 살아 있는 현재로서 느끼게 한다. 세계에 존재하는 차별이 단지 신분적 차별만이 아니며, 인권의 실현이라는 것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종종 잊곤 하는 사실을 형평운동은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세교연구소 소장
경향신문 2003년 5월 23일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5230300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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