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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중국 당내 개혁파와 “一二九(이알지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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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1-29 09:21 조회21,0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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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반 독자에게 다소 생소한 『염황춘추(炎黃春秋)』라는 잡지가 중국 정치개혁을 둘러싼 논란의 첨병으로 등장했다. 1993년 4월 창간된 이 잡지의 주요 주제는 중국공산당사이다. 이 잡지는 그 동안 중국공산당의 정통적 해석에 도전하는 글을 게재하며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켜 왔는데, 2007년 2월호에 인민대학 전 부총장 시에타오(謝韜)의 “민주사회주의모델과 중국의 길(民主社會主義模式與中國道路)”라는 글을 게재하면서 정치개혁을 둘러싼 논란에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 글은 사회민주주의를 중국이 나아갈 길로 주장하며 중국 내에서 격렬한 논쟁을 촉발했다.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중국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한 글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 의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의 영도와 프롤레타리아트독재라는 스탈린식 정치모델의 유산을 계속 견지하고 있는 중국에서 자유․민주․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기초한 헌정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사회민주주의의 복권을 주장하는 글은 매우 도전적인 것이다. 나아가 이 글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중국공산당이 수용한 맑스레닌주의보다 마르크스, 엥겔스 사상의 정수를 이어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 잡지의 부사장 양지셩(楊繼繩)이 이 글을 중국내 이념적 기준에 대해 전복적 의미를 갖는다고 지적한 것은 결코 지나친 평가가 아니다. 이후 『염황춘추』는 친회이(秦暉)의 프롤레타리아트독재를 부정하는 글(2008년 1월호)과 천홍이(陳弘毅)의 헌정을 주장하는 내용(2009년 1월호)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여기서 중국공산당사를 다루는 일종의 역사 잡지가 왜 정치논쟁의 선두에 서게 되었는가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사실 중국 내에는 서구식 민주주의의 도입을 주장하는 일군의 반체제 지식인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중국 내에서 언론활동에 커다란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에 주로 해외매체를 통해서 주장을 알려 왔다. 반면 『염황춘추』는 중국 내에서 현재 정치개혁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발언을 하는 매체로 생존하고 있다. 그 생존의 비밀은 바로 『염황춘추』를 운영하고 이에 기고를 하는 사람들이 중국공산당의 혁명과 개혁개방에 커다란 공헌을 한 원로들이라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이 잡지의 창간은 전 국방부 장관 장아이핑(張愛萍)과 전 국방부 부장관 샤오커(蕭克)의 후원을 받았다. 이 두 장군은 1989년 천안문시위에 대한 무력진압을 반대하는 서한에 서명한 7인 장군 중 2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관심을 끌 만한 인물은 이 잡지의 고문인 리우이(李銳), 두룬셩(杜潤生), 위광위엔(于光遠), 리창(李强) 등 4인이다. 이들은 창간호부터 이 잡지에 당사(黨史)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정치개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글을 발표하며 잡지의 영향력을 증가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이들 4인은 모두 소위 “이알지우(一二九)세대”이다. 이 세대는 최근의 사회변화와 함께 등장한 세대가 아니라 나이가 90 전후인 고령자들이다. 이 세대는 중국공산당이 대장정을 끝내고 샨시성 북부에 도착한 직후인 1935년 12월 9일(이알지우는 129의 중국발음이다)부터 베이징 등 중국 주요도시에서 일련의 반일․반장개석 투쟁을 주도했던 대학생 출신 당간부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칭화(淸華)대, 베이징(北京)대와 같은 일류 대학출신이라는 점에서 주로 농촌 지역에서 충원된 홍군 출신 당간부들과는 성향이 다르다.

 

이들은 건국 이후 대부분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이들의 정체성이 더욱 분명해진 것은 개혁 개방 이후 중국공산당 내에서 가장 개혁적 집단을 형성하면서부터이다. 리루이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교조적 맑스레닌주의보다는 민족주의적, 민주주의적 지향이 공산주의 운동에 투신하게 만든 중요한 동인이었고, 중국공산당 내의 다른 간부와는 달리 이상주의적 색채가 강하고 독립적 인격을 중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들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사회주의 중국이 건설되는 과정에 중국공산당의 좌경적 이념을 점차 수용해갔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의 실패를 경험하며 이 세대 중 일부가 중국 사회주의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시작했고, 개혁개방시기 중국공산당 내에서 개혁민주파(경제개혁과 정치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를 형성했다.

 

특히 이알지우세대 중 가장 두르러진 활동을 하고 있는 위에서 언급한 4인 고문들이 개혁개방시기, 특히 개혁개방 초기 수행한 역할은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마오쩌둥의 비서를 역임했던 리루이는 마오쩌둥 사상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촉구하며 중국이 사상적 미망에서 벗어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위광위엔은 개혁개방정책을 이론적으로 정당화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으며, 두룬셩은 1980년대 초반 경제개혁의 돌파구가 된 소위 농가경영책임제를 도입하는 정책을 일선에서 주관했고, 리창은 후야오방의 가장 절친한 친구로 과학정책의 새로운 틀을 만들었다. 이들은 모두 1989년 6월 천안문사태 당시 학생운동에 동정적 태도를 취했다는 이유로 중국공산당에서 제명될 위기를 겪기도 했다(당시 중공의 원로들의 조직인 중앙고문위원회에서 4명에 대한 당원증 발급을 일시 중단했는데, 그 4인이 이들이다). 이러한 정치적 풍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중국정치체제에 대해 더욱 적극적이고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고 있다. 『염황춘추』는 이런 활동이 전개되는 가장 중요한 무대가 되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최근 상황의 변화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작년 11월 중국선전부 관계자가 『염황춘추』의 책임자들이 고령이라는 이유를 들어 지도부 개편을 권고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문제가 더 확대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새해 들어 중앙선전부에서 퇴직 당간부의 언론활동을 제한하는 지침이 발표되는 등 『염황춘추』에 대한 압력이 강화되고 있다고 한다. 중국공산당이 당내의 이러한 목소리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이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중국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가는 단순히 이들의 개인적 운명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정치개혁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 남 주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서남통신, 2009.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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