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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서] 소국굴기와 중형국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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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2-23 09:08 조회20,5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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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굴기’란 말은 익숙하다. 지난 2006년 11월 중국 중앙텔레비젼(CCTV)에서 방영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12부작 다큐멘타리의 제목인데 2007년 1월 우리 교육방송에서도 방영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그 내용은 인류역사상 출현한 9개 대국의 비결을 탐색해 그것이 국민자질과 문화적 힘(soft power)임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소국굴기’란 말은 아주 낯설 것이다. 그것은 타이완에서 출간된 책 제목이다. 대륙에서 발신한 ‘대국굴기’ 전략에 맞대응한 장아중(張亞中)의『소국굴기』(2008)란 책은 그 제목에서부터 그들의 바램이 물씬 느껴진다. 소국으로 ‘남에게 존경받는’ 국가가 되어 인류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친 스위스 등 6개국이 탐색되었는데, 그 비결은 경제력과 문화 역량이다. 국가와 비국가의 경계에 선 대만의 고뇌와 희구가 배어있는 구상이 아닐 수 없는데, 그로부터 대국으로 굴기하고 있는 대륙중국과의 비대칭적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안간힘 쓰는  ‘절망의 소국의식’이 엿보인다.

 

 타이완에서만 ‘소국’의 위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발전전략을 짜려 한 것은 아니다. 사실은 한국에서도 이미 10년 전부터 소국주의에 대해 주목했다. 최원식은 “소국주의와 대국주의의 내적 긴장을 견지하는 일”을 한국 사회의 과제로 삼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런 그가 곧 시중에 나올 계간 『창작과비평』봄호에 실린 글「대국과 소국의 상호 진화」에서 그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소국주의의 고갱이를 중형국가론에 접목하는 작업과 함께 우리 안의 대국주의를 냉철히 의식하면서 그를 제어할 실천적 사유의 틀을 점검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특히 나중의 과제와 관련해 동아시아의 사상적 자원에 주목하고, 맹자의 소국주의에 기반한 사소주의(事小主義) 즉 중국을 왕도적 대국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대국이 소국을 잘 섬겨야 소국이 대국에 귀의한다는 주장이나, 강자와 약자의 상호진화 가능성을 전망하는 원불교의 회통적 사유 즉 자리타해(自利他害)하는 강자가 자리이타(自利利他)하는 강자로, 자해타리(自害他利)하는 약자가 자리이타(自利利他)하는 약자로 함께 진화하는 길을 찾는 노력을 소중하게 챙긴다.

 

 이러한 이념적 지향은 중형국가 구상과 결합함으로써 한층 더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다.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성취한 한국은 더 이상 19세기 말과 같은 약소국에 속하지 않는다. 한국의 현재 위치에 합당한 정체성과 발전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기에 시의적절한 제안이다. 그런데 그의 글에 중형국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적다. 그래서 필자가 제기한 적이 있는 복합국가 구상으로 보충해 보려고 한다.

 

 복합국가(compound state)는 단일국가가 아닌 온갖 종류의 국가결합 형태, 즉 각종 국가연합(confederation)과 연방국가(federation)를 포용하는 가장 외연이 넓은 개념이다. 이것을 ‘흔들리는 분단체제’로 인해 남북 국가간의 경계가 유연해진 한반도의 현실에 적용하면 그 모습이 좀더 또렷해진다. 단번에 남북한이 하나의 국민국가를 이룩하는 통일이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진행되는 동안에 필요한 것이 복합국가이다. 느슨한 연방 또는 국가연합 같은 형태로 남북의 점진적 통합이 중장기적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그 과정과 연계되어 남북이 모두 분단체제극복에 기여하는 개혁을 추진하는 것을 각자의 단기적 과제로 삼는다.

 

  소국주의와 결합된 복합국가는 통일 과정에서 나타날 수도 있는 대국주의(곧 대한국주의) 지향을 견제할 수 있다. 여기에 중형국가 발전전략의 핵심이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중국이나 일본에서 소국주의 유산을 일깨워 각각의 대국주의적 발전전략을 수정하고 21세기에 적합한 국가의 정체성과 발전전략을 추구하도록 추동할 수 있다면, 한국은 평화와 공생의 동아시아를 위한 매개적 주체가 될 수 있을 터이다.

 

 100년 전의 세기 교체기 청일전쟁에서 러일전쟁에 이르는 10년 간에 한중일 삼국은 근대로의 이행에서 결정적으로 갈라졌다. 일본은 성공하여 근대의 ‘우등생’으로 크게 부상한 반면, 전쟁에 진 중국은 ‘절반 열등생’, 그리고 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로서 끝내 식민지가 된 한국은 ‘열등생’으로 전락하였다. 그 과정에서 한국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의 동아시아가 어떤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 한국의 새로운 정체성과 발전전략의 선택이 그 관건임은 지난 역사가 가르치고 있다.  

 

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서남포럼 운영위원)

(서남통신. 2009.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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