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제] 미국의 극우파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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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4-17 08:29 조회21,03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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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한 지 석 달도 채 되지 않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조용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요즘 미국 진보파들의 블로그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극우파’에 대한 염려, 그리고 그들에게 어떻게 맞설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극우파, 민병대, 백인 우월주의 등이 어제오늘의 골칫거리가 아닌데 요즘 들어 이 문제가 왜 크게 다뤄지고 있는가? 단순히 일부 진영의 노파심 때문만은 아니다. 권력의 핵심부에서까지 노심초사하는 국가적 사안이 되어 있다. 최근에는 미국 국토방위부까지 나서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지난 4월7일 국토방위부에서 경찰 등 전국 법집행기관에 극비리에 내려보낸 보고서가 기밀 해제되어 언론에 공개되었다. 국토방위부 정보분석처와 연방수사국(FBI)이 함께 작성한 아홉 쪽짜리 ‘현황 평가보고’는 “우파 극단주의: 현 경제·정치 상황이 (극단주의의) 급진화와 충원 열기를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라는 긴 제목을 달고 있다.
보고서는 미국의 극단주의를 크게 두 갈래로 분류한다. 첫째, 특정 종교나 인종 등에 대한 증오에 근거해서 활동하는 집단. 둘째, 연방정부 혹은 일체의 정부조직을 거부하는 집단. 이 범주에는 이민 반대 등의 단일 이슈로 활동하는 세력도 포함된다. 현 상황이 특별히 이들의 활동을 자극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선 경제 상황의 악화가 사람들에게 온갖 종류의 증오를 정당화하는 빌미를 주고 있다. 인터넷 채팅그룹에서 만난 실직자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곤경에 속 시원한 설명을 제공해 주는 극우파의 논리에 쉽게 끌리기 마련이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당선도 극우파에게는 충원 확대의 이상적인 기회가 되고 있다. 피부색을 대놓고 거론하기보다 흑인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소수인종에 대한 기회 제공,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권 확장 등을 교묘한 정치적 선동과 연결시킨다.
불법 이민에 대해 정부의 단속이 느슨하다는 점도 극우파들에게는 좋은 비난거리가 된다. 총기 소지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조처도 극우파들은 이른바 ‘무기를 보유할 천부인권’을 침해하는 반헌법적 움직임으로 해석한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해 시중 유통 탄약이 품귀현상을 보이면서 극우파들은 거의 편집증적으로 탄약 사재기를 시도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헤게모니가 추락하는 것도 미국 정부 책임이라고 본다. 이들은 정부가 ‘세계정부’의 출현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중국과 같은 신흥 경제대국이 미국 내에 투자하는 ‘침략행위’를 저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극우파는 전쟁터에서 귀향하는 제대병들, 환멸과 허무에 잠겨 있는 참전용사들을 절호의 충원 대상으로 여긴다. 이 모든 상황은 1995년 오클라호마시티 폭파사건을 위시한 1990년대의 극우파 전성시대를 연상시킨다. 그때와 다른 점은 정보통신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극우파들의 상호 교류와 기술력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빈곤과 극우파 충원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설명이다. “높은 실업률은 소외로 이어질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사람들이 극단주의 사상을 더욱 쉽게 받아들이게끔 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부모의 실직 상태가 자녀들에게 외국인 혐오증과 민주주의 반대 사상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한 독일의 연구 결과까지 인용하고 있다. 경제위기와 사회불안이 우파 극단주의를 불러일으키기 쉽다는 사실은 20세기의 역사가 너무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미국의 바깥세상은 이런 동향에 무풍지대인가? 우리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워야 마땅할 것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09.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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