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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중국 좌파 민족주의의 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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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4-25 12:19 조회20,9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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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중국(中國不高興)>이라는 책이 출판 두 달 만에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이슈가 되고 있다. 세계 유수 언론들이 이 책을 소개하는 가운데, 이 책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반응이 이렇게 극명하게 나뉘면 나뉠수록 책장사는 잘 되는 법이기에 이 책은 벌써 8쇄를 찍으면서 47만부를 팔았고, 해외 8개국에 판권을 수출했다고 했다. 민족주의를 팔아 상업적 이익을 거둔 가장 성공한 사례라는 평가가 중국 언론에 자주 나오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은  요즘 중국 대중들 가슴 속에 잠재된 중국 민족주의 정서를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서구에 대한 노골적인 불쾌한 감정과 “중국이 세계를 이끌 역량이 있다”는 미래 세계에서 중국이 수행할 역할에 대한 기대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여, 중국이 서구와 ‘조건적으로 결별’하고 세계를 주도해 나갈 비전을 담은 중국 국가 대전략을 세울 것을 촉구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대국의식과 근대 이후 형성된 서구에 대한 콤플렉스가 절묘하게 결합된 이 책은 중국인들의 반서구 민족주의 정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물론이고 동아시아 어느 나라에서건 폐쇄적이고 다분히 공격적이기까지 한 민족주의가 대두하는 일은 동아시아 평화에 치명적인 위협이라는 점에서 최근 중국에서 부상하는 민족주의 정서는 충분히 위험하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의 이러한 민족주의 정서가 쉽사리 사그라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에서 주도하는 관방 민족주의라면 정부 캠페인이 끝나면 시들하겠지만 최근의 중국 민족주의는 대중 민족주의의 성격을 지니고 있고, 중국 정부와 지식인들은 이런 극단적인 대중 민족주의 분위기에 오히려 거리를 두고 있는 현실이다. 중국 인민폐로 29.8위앤이나 주고 사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내용이 거칠고 형편없는데다가 평소 중국 인터넷 등에서 민족주의의 단골 논객이었던 5명의 공동 필자가, 원래 이 책의 탄생과정이 그러했듯이, 그야말로 잡담하는 수준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 책이 자신들의 생각을 대변했다고 여기는 중국인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서구에 대한 중국인들의 불만과 불쾌감만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자유주의 일파와 나아가 중국 정부에 대한 중국인들의 불만과 불쾌감도 대변하고 있다. 이 책이 반서구 민족주의 서적을 넘어 오늘날 중국의 자유주의와 좌파 사이의 새로운 지형도를 담고 있는 것은 이 지점이고, 1996년에 나온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인> 같은 반서구 민족주의 서적과 구분되는 특징도 여기에 있다. 서구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중국 자유주의 지식인들에 대한 불쾌한 감정과 거친 비판이 이 책의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서구 자본주의와 서구 민주주의를 모델로 삼아 중국을 개혁하고 서구 자본주의의 하청 공장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하면서, 중국의 대표적인 자유주의자들을 실명으로 거론하면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문맥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 자유주의자들은 중국을 서구의 식민지로 만들려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 공감하는 중국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 현실의 이념적 지형학이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금 중국 현실에 대해 좌파는 좌파대로 자유주의자는 자유주의자대로 불만을 가지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경제개혁에 비해 정치개혁이 지체되고 인권과 시민권, 사유화가 제때에 제대로 시행되거나 확보되지 못하면서 중국 사회의 제반 사회문제가 가중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장화가 경제 영역을 넘어 사회 제반 영역으로 확대되어야 중국의 사회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좌파들은 빈부 격차나 의료 보장 등의 문제가 시장화와 사유화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이념의 대치 상태에서 요즘 들어 좌파의 주장에 공감하는 중국인들이 늘어가고 있다. 중국 사회의 시장화로 인해 그만큼 고통을 겪는 중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이다.

 

중국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불쾌감이 서구에 대한 불만과 불쾌감과 결합하면서 중국인들 사이에 좌파 민족주의가 확산되는 현실은 자유주의에게는 물론이고 좌파에게도 중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 자유주의는 경제의 시장화와 사유화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중국 민중들의 생존권과 경제적 요구를 보다 더 절실히 수용하지 않는 한, 중국 자유주의 개혁은 중국 민중들의 저항에 직면할 수 있을 것이다. 좌파에게 중국 대중들의 반서구 민족주의는 호재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치명적 악재일 수 있다. 좌파가 폐쇄적이고 때론 공격적인 민족주의의 장식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불쾌한 중국>의 유행 현상이 중국의 밑바닥 민중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 보다는 서구에 대한 적개감과 증오, 중국 민족의 우월의식에 사로잡힌 중국 좌파들, 아직도 자신들을 처지를 아편전쟁 당시의 중국으로 상정하는 중국 좌파들의 빈곤하고도 위험한 이론적, 실천적 곤경을 상징한다면, 중국 좌파의 미래는 지극히 암울하고도 위험하다. 중국 좌파 민족주의가 서구를 주로 겨냥한다고 하더라도 중국에서 민족주의가 고조되고, 중국 좌파 민족주의가 일본 우파 국가주의의 판박이가 되는 현실은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에 치명적 위험과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증대되는 중국 좌파 민족주의와 일본 우파 국가주의 사이에서 동아시아의 경쟁적인 민족주의의 압력을 낮추는 한국의 창조적 역할이 절실하다.

 

이욱연(서강대 중국문화전공 교수)

(서남통신. 2009.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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