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석] 87항쟁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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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6-20 11:17 조회21,41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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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민주주의는 연조가 짧은 정치체제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서양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이 처음 수입될 때 ‘하극상’으로 이해되었다는 사실은 당대 위정자들에게 ‘민주’(民主)가 얼마나 새로운 개념이었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성과 계급, 인종의 장벽을 넘어서서 만인이 평등하게 각 1표씩 행사함으로써 자신의 대표자를 뽑을 수 있는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기까지 수많은 희생이 따랐던 제도가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정당정치와 3권분립이 근간인 민주주의가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획득한 정치체제임을 부정하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1인1표라는 대의제를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완벽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 위험성은 역사적으로 희대의 독재자인 히틀러가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탄생했음을 상기하는 것으로 족하다. 한마디로 시민들이 깨어있지 않는 한, 시민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각성한 주인의식을 갖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위험천만한 정치체제인 것이다. 이 뻔한 사실을 현실에서 제대로 확인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김대중․노무현정권의 공과를 온당하게 결산하지도 않은 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해버린 이명박정권의 등장이 웅변한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도 그 참뜻을 구체적인 역사현실에서 헤아리지 않는 한 한낱 공허한 수사에 불과한 것이다.
어쨌든 서구, 특히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민주주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조정과 타협을 통해 형성된 것과는 달리 외세에 의한 식민통치 끝에 분단으로 귀결된 20세기 후반 한국의 정치사는 민주주의에 관한 한 세계사적 보편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하나의 특수한 사례에 해당하기도 한다.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길거리 정치’야말로 바로 그 사례의 상징적 표현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1960년 4․19혁명에서 1987년 6․10항쟁에 이르는, 정당정치의 한계를 거리에서 극복해온 시간은 숱한 고난 끝에 쟁취한 한국 민주주의의 도도한 승리의 순간이다. 진보든 보수든 지식인이라면 그 점은 자랑스러워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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