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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지켜야 할 최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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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6-27 08:55 조회21,9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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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여 사이 택시를 탄 것이 그 전 1년간 택시를 탄 횟수보다 더 많았지 싶다. 촛불집회로 버스 길이 막혀 매일 택시를 타고 멀리 돌아서 귀가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기사분에게 교통체증 때문에 짜증스럽지는 않은지 넌지시 물어보았다. 놀랍게도 지금껏 단 한 번도 불평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대선 전만 해도 열에 일고여덟은 무조건 ‘이명박’을 외치던 것과 비교하면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다. 촛불집회만큼 그토록 짧은 기간에 그토록 많은 분석이 나온 사건도 없을 것이다.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고 나서도 이 주제는 두고두고 논문 쓰는 연구자들의 ‘행복한 사냥터’가 될 게 분명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광우병 우려와 인권을 연결한 분석은 많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리스크와 안전성 문제만큼 현대 인권과 딱 맞아떨어지는 주제도 없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도 “국가기관은 시장 우선주의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 대한 충성 때문에 가장 절대적인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국민의 건강권을 내버렸다”고 하지 않았던가?

 

택시를 타면서 깨달은 것이지만 이명박을 찍은 사람이건 찍지 않은 사람이건, 딴 건 몰라도 먹거리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생활문제만큼은 이심전심이 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것은 좌우가 함께 만날 수 있는 ‘중첩되는 합의의 영역’에 속한다. 인권운동가들은 오래전부터 인권이 이런 차원에서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꿈꿔 왔다. 인권운동은 과거에는 국가가 개개인의 자유를 억압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인권의 초점을 두었다. 나는 이것을 ‘탄압’ 패러다임이라고 한다. 탄압 패러다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인권은 한 단계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 준다. 그것은 국가가 시민들의 의식주와 안전과 사회보장을 적극 실현해 주는 것이다. 이것을 나는 ‘웰빙’ 패러다임으로 표현한다. 60년 전에 나온 세계인권선언 제25조에도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웰빙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에는 먹거리, 입을 옷, 주거, 의료, 생활에 필요한 사회서비스 등을 누릴 권리가 포함된다”고 나와 있다. 이 구절만 보더라도 현 정부가 얼마나 인권과 담을 쌓은 권력인지 백일하에 드러난다. 먹거리(쇠고기), 주거(수도권 규제완화와 뉴타운), 의료(민영화), 사회서비스(삭감) 등 어떻게 하나같이 반인권적인 정책만 골라서 하겠다는 말인가? 보수파가 권력에서 떨어져 있던 지난 10년 동안 우리 시민들의 의식은 인권의 ‘웰빙’ 패러다임과 정확히 일치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보수파는 ‘잃어버린 10년’을 외치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 사람들이 ‘개념 없이 허송세월한 10년’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다 보니 일반시민들이 얼마나 삶의 질에 대해 높은 기대치를 갖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을 게다. 국제인권정책협의회가 이번주에 내놓은 보고서에서도 건강, 식량, 물, 생계권 등을 세계 인권의 핵심 요소로 꼽고 있다.

 

청와대 고위직 중에 세계인권선언을 읽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진심으로 충고한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를 제대로 채우고 싶으면 현대국가에서 ‘중첩되는 합의의 영역’으로 인정되는 인권 원칙을 제발 수용하라. 이문영 선생의 책 제목대로 ‘지켜야 할 최소’를 무시하니 모든 일이 이렇게 꼬이는 게 아닌가. 보수주의도 정도를 걷는다면 민주정치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분명히 있다. 인권으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정치’를 작동시켜라. 혼란을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끝까지 고집을 피웠을 때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정말 아무도 모른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08.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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