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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감세정책, 그 삼중의 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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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12-13 22:47 조회21,7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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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세금만큼 근대국가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 제도도 없을 것이다. 아메리카 독립혁명에서도, 프랑스 대혁명에서도 불공평 과세에 대한 반감이 단단히 한몫을 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독립하자마자 의회에서 연방재산세법을 제정했고, 프랑스 혁명 후 나폴레옹은 과세를 중앙정부로 일원화했다. 그만큼 근대국가에서 세금이 사활적인 지위를 갖는다는 말이다.

 

세금은 국가의 물리적 존립에도 중요하지만, 민주주의 발전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요소다. 세금이 늘어나는 과정은 투표권이 확대되고 민주주의의 동의 원칙이 뿌리내리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냉전이 끝나면서 전세계적으로 세금의 전성기도 막을 내렸다. 시장만능주의는 개인과 기업에 대한 감세를 종교와 같은 열정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추세에 대한 반성도 나오고 있다. 예컨대 우리가 신줏단지 모델로 떠받드는 미국에서 금융위기 이전에도 이미 상위 30%의 부자들이 내는 세금이 전체 세수의 65.3%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사상이든 머릿속에 한번 입력되면 무조건 ‘고’를 외치는 한국에서는 계속 감세만이 살길이라는 궤변을 굽히지 않고 있다. 감세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선 보도가 많이 되었으므로, 이제 감세가 전세계 차원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짚어보면 좋겠다.

 

공정한 세금을 판단하는 기준은 세금을 낼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전세계의 세금 패러다임은 조세정의와 거리가 멀다. 부자에서 빈자에게, 부국에서 빈국으로 부담을 떠넘기는 형국이다. 한 국제 엔지오는 과거엔 법인세·개인소득세 등의 세금을 피하기 위해 조세피난처라는 곳들이 따로 존재했지만 이제는 점점 온 세상이 ‘조세회피 세계’가 되어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taxjustice.net) <뉴 인터내셔널리스트>의 최근 보도대로라면 한국은 세계 36위권의 조세회피국으로 분류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만 놓고 보면 13위권이다. 우리는 세금에 관한 한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스위스, 영국, 미국보다도 더 ‘관대한’ 나라다. 잘사는 나라들이 이런 식으로 세금을 줄이니 가난한 나라들은 갈수록 등이 휜다. 2002년부터 2006년 사이의 평균치로 보아 전세계 부국에서 빈국으로 원조, 이주노동자 송금, 해외 직접투자, 신규대출 등 총 8600억달러가 이전되었다. 이에 반해 빈국에서 부국으로 역이전된 돈은 기업과실 송금, 부채상환 등 모두 1조2000억달러에 이르렀다. 기가 막힌 현실이 아닌가.

 

게다가 전세계 감세 패러다임은 기후변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은 선진국과 일부 급속성장 개도국들이다. 그런데도 환경과 관련된 세금은 계속 줄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 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국 중 17개국에서 환경 관련 세금을 줄였다. 후손들의 무덤을 조상이 미리 파주는 꼴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감세정책은 이중 삼중의 과오를 저지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애초에 불공정한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한 과오, 나쁜 시스템 안에서 부자 감세를 더 불공평하게 추진해 서민들의 생활을 더 팍팍하게 만든 과오, 가난한 나라의 어려움을 더 어렵게 만든 과오가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땅의 서민이 당하는 괴로움이 이주노동자의 눈물, 더 나아가 전세계 빈국의 눈물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구화 시대에 연대를 이야기하려면 국내 불평등과 국제 불평등을 잇는 연결고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선 사회학적 상상력과 열린 공감의 자세가 필수적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08.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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