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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외] ‘정치’ 거부하는 CEO 대통령 신뢰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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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2-28 10:26 조회20,6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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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과 문지문화원 ‘사이’가 공동기획한 ‘위기를 극복한 리더십’ 시리즈 및 공개강좌(1월7일~2월25일 매주 수요일)가 7회로 막을 내렸다. 이 기획은 프랑수아 미테랑(프랑스), 로마노 프로디(이탈리아), 빌리 브란트와 헬무트 콜(독일), 페르 알빈 한손(스웨덴), 존 F 케네디(미국), 덩샤오핑(중국) 등 외국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살펴보고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 필자로 참여한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미국학),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중국학),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가 경제와 남북관계 등 우리 사회의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데 요구되는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대담을 나누었다.

■ 견제와 균형 필요

대담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1주년(25일)의 시점에서 이렇다 할 리더십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스로와 주변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 정권홍보에 치중하는(박상훈) 상황인데 그 이유로는 대선과 총선에서의 압승이 가져온 지나친 자신감(이남주), 시민사회의 수장으로서 대통령직에 대한 관념자체가 극히 취약(안병진)한 것 등을 들었다.

이전 정권과 비교해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견제와 균형에 대한 초보적 수준의 문제의식이 존재했으나 이 대통령은 이마저 부족한 상황(안병진)이며, 민주화 이후 정권이 가진 두 가지 방향, 즉 권력의 도덕성과 사회경제적 민주화라는 방향을 역진(이남주)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전 정권의 과오도 작용한다. 민주·개혁을 외친 김대중·노무현 정부하에서 서민들의 상황이 더 어려워지면서 경제 우선주의, 성과주의가 한국 사회에 만연하고 이것이 이 대통령의 ‘CEO 대통령론’에 표를 몰아준 결과를 낳았다(이남주)는 것이다.

■ CEO 대통령의 함정

CEO 대통령이란 기업가의 역할을 국가로 확장한 것으로 정치를 불신, 거부한다. 건설회사 CEO 출신인 이 대통령은 권위주의적 발전주의를 내면화했으며, 대통령이 된 뒤에도 촛불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에서 보듯이 정치라는 갈등적 상황을 회피하고 모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박상훈).

미국식 근대자본주의 사회의 CEO가 갖춘 혁신적 리더십이 아니라 왕정적 지배를 했던 국내 재벌회사의 CEO 리더십은 그 자체로 문제점을 갖는다. 같은 CEO형 리더십이라도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안병진). 과정으로서의 정치를 경시하고 실적이나 결과만을 말하다 보니 오히려 신뢰를 잃고 부정적인 효과를 낳는다(박상훈).

■ 정치도, 실용도 실패

보수의 가치가 노동경시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보수는 공동체의 통합이란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에 중하층의 삶을 보장하려는 노력을 한다. 한국 경제는 무엇보다 인간적·공동체적 기초가 넓게 서지 않으면 성장이 안되는 조건이다. 그러나 이 정부는 분배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박상훈).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정치적 보수임에도 분배의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했다. 미국식 문어발 체제를 개혁하고 환경문제에 대해 진보보다 더욱 급진적인 정책을 취했다. 그런 점에서 이 정권의 문제는 저소득층을 위한 따뜻한 관심, 건전한 보수의식이 없다는 것이다(안병진).

더구나 지구화라는 추세 속에서 현재 환율 관리 등 일부 문제를 빼놓고는 경제실적을 정부와 연관시키는 게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경제문제에 있어서 임기 내에 실적을 보이려는 조바심보다 상당히 신중한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이남주).

이런 점은 비단 이명박 정권의 문제는 아니다. 민주화가 단기업적주의와 만나면서 갖는 부작용에 대해 윤리적 성찰을 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우 민주당과 공화당 집권시기의 분배효과가 수치상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소위 진보정권인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서민들의 생활이 나아지지 않아 당파성이 형성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개인을 공격하는 것보다 경제·사회·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필요하다(박상훈).

■ 남북관계는 리더십 실험대

남북관계는 한국의 지도자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남북관계가 이렇게까지 경색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지난 1년에서 가장 큰 실수로 보인다.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박근혜와 비교해 일부 보수층의 우려를 낳을 만큼 적극적 입장을 보이기도 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어졌다(이남주).

이 정부는 그동안의 모든 보수·진보정권이 북한에 대해 취해온 민족주의적 관점이 없는 정권이라는 점에서도 특이하다(이남주). 어느 정도의 상호호혜와 포용관계는 평화유지비용이란 점에서 공감대가 이뤄져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공존의 틀 바깥에서 배제적 정치를 한다(박상훈). 강압외교라는 것은 맥락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는데 이명박 정권은 강압외교에 대한 맹목적 신앙을 갖고 있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런 노선을 바꿀 탈출구가 생겼는데 이걸 이용하지 못한다(안병진).

■ 실용은 실험 아닌 점진주의

이 대통령이 내세운 실용은 원래 실험이 아니라 점진주의에 가깝다. 이념형으로 정형화된 정책을 쓰는 게 아니라, 사전예측과 효과검증을 철저히 해서 어떤 전제도 의심하고 효과 위주로 정책을 실행하는 것이다. 덩샤오핑을 실용주의자라고 하는데 그는 중국처럼 이념이 강한 사회에서 점진주의적 개혁을 통해 경제발전의 효과를 냈다. 우리도 근대화시기의 조급증을 벗어날 때다(이남주).

오바마는 당선 직후 회사에서 농성하는 노동자에 대해 “절대적으로 옳다”고 편을 들었다. 이를 놓고 보수 논객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래디컬 프레지던트’라는 칼럼을 썼다. 사회 전체의 견제와 균형을 위해 지도자는 어떤 점에서 과격하게 치우칠 필요도 있다(안병진).

이 대통령이 개성적, 개인적 매력이 없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지도자는 신뢰나 책임감의 토대가 돼야 하며 결과까지 고려한 윤리적 요소를 갖춰야 한다. 용산 참사에 대해 기술적 방화의 지점만을 따지는 건 윤리적 책임에 대한 완벽한 지각 없음의 증거다. 이 대통령으로서도 여러가지 할 말이 있겠지만 지도자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박상훈).

(경향신문. 2009.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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