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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대학을 우롱하는 '폴리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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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4-16 13:51 조회23,8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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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서 서울대 사범대학 체육교육과의 김연수 교수가 지역구 공천을 받아 출마하는 서울대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학내 언론에 따르면 김 교수는 학장의 사직 권고를 거부하고 육아 휴직계를 제출했다. 사범대학 인사위원회는 휴직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권고사직을 결의했고, 체육과도 사직을 권고하는 성명을 별도로 발표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끝내 이를 수용하지 않은 채 총선에 나섰고, 김 교수의 담당 강의는 다른 강사를 구해 맡겨놓은 상태이다.

 

이 일은 학내에 ‘폴리페서’에 대한 뜨거운 논란을 불러왔고, 4월 4일 교수 81명이 이장무 총장에게 ‘선출직 공무원’ 진출 교수의 휴직 및 복직에 대한 예규 제정을 건의했다. 4월 8일 대학본부는 회의를 열어 건의 내용을 수용하자고 의견을 모았으며, 조만간 정계로 나가는 교수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낙선한 김 교수가 학교에 돌아오려 한다는 사실이다. 현행 규정으로는 김 교수의 복귀를 막을 수 없으며 징계도 어렵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일은 무엇보다도 교수의 학자적 양심과 윤리의 문제임을 기억해야 한다. 또 법과 규정으로 따져도 김 교수가 사직하거나 징계를 받을 사유가 없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휴직도 사직도 아닌 상태에서 선거에 나갔으니 이는 명백한 근무지 이탈로 징계사유이다. 공천을 받은 3월 6일부터 선거일인 4월 9일까지만 결근했다고 치더라도 학기 초의 중요한 시기에 한 달 이상 월급을 받으며 자리를 비운 것이다. 또 김 교수는 육아휴직 신청으로 소속 학과와 학교 당국을 우롱했다. 하루 24시간도 모자라는 치열한 선거전에 뛰어든 사람이 육아 휴직이 필요하다는 것은 교수의 품위를 땅에 떨어뜨려 짓밟는 거짓말인 것이다.

 

서울대 외에도 비슷한 사태를 유야무야 넘기는 대학들이 많다. 역시 지역구 공천을 받았다가 낙선한 경북대 이종현 교수는 지난 주 한 방송사 9시 뉴스의 전화 인터뷰에서 “국립대학 교수는 출마 자체가 휴직 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자신이 선거 때문에 학교를 비운 사실을 법의 맹점을 들어 변호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물론 대학교수는 정치활동의 자유를 가지고 있고,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나라에 보탬이 되기 위해 정계 진출을 꾀할 수 있다. 그러나 학생의 수업권을 침해하고 학교 운영에 지장을 주는 처신에 대해 이처럼 무감각하다면 과연 개인적 영달이나 파당적 이해를 넘어서서 국민과 국가를 위하는 정치를 할 수 있을까.

 

요즘 젊은 교수들의 대다수는 주당 60시간 내외를 휴일도 없이 개인생활을 희생하며 연구와 교육에 몰두한다. 문제가 된 김 교수가 속한 체육과는 어떤가. 내가 직접 관찰한 바로도 체육과 교수진과 학생들은 방학이 사실상 없다. 그들은 전공의 특성상 방학 중에 종종 합숙을 통해 긴요한 교육과 훈련을 하며, 일반 학생을 위한 방학 중의 강좌나 정기적인 체육 캠프를 준비하고 실행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김 교수가 자신이 몸담은 학과의 이런 실정을 정녕 모르는 게 아니라면 동료교수와 제자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바란다. 서울대도 김 교수가 스스로 사직하지 않을 때 대학운영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단호한 조처를 취해야 마땅하다. 나아가 정부와 국회는 교육공무원법, 공직선거법 등 관련 법률을 시급히 손질하여 더 이상 한국의 대학에서 교수직을 정치 진출의 발판으로 이용하는 행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학의 분위기가 혼탁할 때 사회가 투명하게 굴러가길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김명환/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한겨레. 2008.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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