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서] 중국인 유학생의 '위기의식'의 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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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5-17 13:45 조회21,55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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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초 타이완 지인이 보낸 이메일을 받고 놀랐다. 그는 대륙의 지인으로부터 받은 메일을 첨부해 보내면서 그 내용이 사실인지 물어왔다. 첨부된 자료는 한국에 유학 와 있는 중국인 여학생이 5월 1일자로 중국 인터넷에 올린 글인데 그 제목이 아주 충격적이었다. “한국인이 미쳤다! 한국의 중국인 유학생은 전에 없는 위기에 처했다! SOS".
지난 달 27일 올림픽 성화 봉송을 둘러싸고 일부 한국인 시위대와 중국인 유학생 사이에서 벌어진 충돌로 유학생들이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있으니 대륙의 중국인들이여, 지원을 요청한다는 투의 호소문이다. 그 문장 가운데는 한국 인터넷에 유학생연합회 간부의 사진을 비롯한 신상명세가 공개되었고, 중국대사관조차 연일 이어지는 시위 행렬에 포위된 위급한 상황이라는 언급까지 있다.
동아시아인의 아이덴티티 형성과 연대운동에 깊은 관심을 갖는 나로서는 이같은 사태를 여간 심각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그것을 중국어권에 전파한 대륙의 지식인이나, 또 그것을 내게 전달한 타이완의 지인이나 모두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해당 사회는 물론 동아시아 논단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이 사건으로 어떤 인상을 받을지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그간의 국내 언론매체의 보도 내용을 훑어보고, 관계당국의 처리과정을 알아보았다. 지금까지 당국은 증거를 채취해 위법사실을 확인해 필요하면 관련자(들)을 추방하거나 재판에 회부하겠다는 방침을 갖고 있을 뿐, 구체적인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는 않다. 대표적인 폭력행위자로 지목된 유학생 한명의 영장도 기각된 상태이다.
이와 동시에 지난 주말 중국 베이징에 간 김에 그곳 지식인들에게 그 사건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응을 탐문해보았다. 그 사건이 주요 언론매체에서 다뤄지지 않은 탓에 그들은 잘 모르고 있었다. 인터넷에 열심히 접속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잘 모를 것이란 반응이었다. 베이징에 체류중인 한국 언론인 한명은 문제의 ‘호소문’에 대해 중국의 인터넷에서 약간의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고 알려줬다. 여러 댓글 가운데, 문제의 ‘호소문’의 내용이 수준도 떨어지고 사리에 맞지 않는 대목도 더러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한국 정부가 사건을 사회정의라는 보편가치에 입각해 처리해야지 민족감정을 앞세우면 큰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하는 비교적 균형잡힌 글이 눈에 띄었다.
베이징을 다녀온 뒤 사태가 악화일로 치닫지 않는 듯해 일단 큰 걱정은 덜었다. 타이완의 지인에게 이메일 받은 당일 전화를 걸어 그 메일의 내용이 과장되었을 것이라고 답한 것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런데 나는 이 사건을 한국인의 중국 인식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 싶어졌다.
먼저 우리 일부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하나의 예로 중앙일보 5월 2일자 1면 머릿기사에 대해 생각해보자. 제목을 “서울 한복판서 폭력시위, 잠재된 중국 경계심 자극”이라고 단 이 기사의 골자는, 지난 5년 ‘진보정권’ 때 멀어진 한미관계에 비해 다가섰던 한중관계가 새 정부 들어서 역전되는 기류가 성화봉송 폭력사태로 한꺼번에 드러났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2002년 대선에서 표출된 국민의 반미정서가 그로부터 5년 지나 반중감정으로 전환되었다는 뜻이다. 과연 이런 진단이 사실에 부합하는 것일까. 미국 소고기파동으로 인한 10대 등의 촛불시위는 또다시 반미정서가 표출된 것으로 설명할 것인가. 우리는 이같은 기사가 정확한 것인지와 더불어 그것이 노리는 사회적․ 정치적 효과가 도대체 무엇인지 추궁해야 한다.
그밖에 한국인의 중국 인식의 성격에 대해서도 따져볼 것이 있다. 필자가 몇년 전 발표한 글에서 한국인과 중국인의 상호인식은 ‘편의적인 오해’로 이뤄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대외인식이란 보통 상대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싶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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