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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이스라엘 폭격과 인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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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1-01 22:03 조회21,2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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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폭격하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다 돼간다.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이스라엘의 폭거가 또 되풀이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전쟁과 평화의 문제가 인권 상황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그런 뜻에서 국제 인권운동은 이번 사태의 전조를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국내에 널리 보도되진 않았지만 유엔 인권이사회는 2008년 3월에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지역의 인권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리처드 포크 교수를 인권특별보고관으로 임명하였다. 포크 교수는 프린스턴대학의 국제법 명예교수로서 베트남전 연구로 국제적인 성가를 떨친 지식인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났을 때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나치가 단죄되었던 것과 유사한 반평화적 범죄”라고 사태를 명쾌하게 정리한 적도 있었다.

 

이스라엘은 포크 교수가 특별보고관으로 임명된 뒤, 거듭된 요청에도 그의 이스라엘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포크 교수는 비속한 의미의 당파적인 사람이 아니다. 지난해 6월 그는 유엔 인권이사회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점령지구에서 저지른 인권침해 사안 외에 팔레스타인 쪽에서 저지른 인권침해 사건 조사도 자신의 업무에 포함시켜 달라고 제안했다. 그래야 인권이사회가 반이스라엘 편향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였다. 불편부당한 행보를 보인 것이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그의 팔레스타인 현지 접근을 불허했다. 서면으로 조사활동을 벌이던 포크 교수는 지난 12월9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미겔 데스코토 브로크만 유엔총회 의장, 나비 필레이 유엔 인권최고대표 등이 가자지구의 식량·통행·의료 등 인도적 재난 상태를 극히 우려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 후 12월14일 포크 교수와 유엔 인권조사단이 가자지구와 서안을 공식적으로 방문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하였다. 이스라엘 당국이 어떻게 대응했을까? 그들은 조사단을 공항에 30시간이나 억류한 뒤 포크 교수를 제네바행 비행기에 태워 내쫓았다. 유엔의 특별보고관을 가두었다가 강제추방한다? 말문이 막히는 사건이었다.

그 뒤 정확히 열흘 만에 가자 사태가 발생했다. 그동안의 정황을 되짚어보면 크게 놀랄 일도 아닌 셈이다. 가자 사태에 대해 포크 교수는 12월27일 공식성명을 발표하여 이스라엘의 행동이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는? 첫째, 몇 안 되는 하마스 집단의 행위를 놓고 150만 가자 주민 전체에게 ‘집단 처벌’을 가했기 때문이다. 둘째, 민간인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셋째,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에 대해 ‘비례성이 결여된’ 과도한 반격을 했기 때문이다. 인권침해 징조가 여기저기서 보이더니 마침내 전쟁범죄급 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번 일은 인권이 평화적 거버넌스의 조기경보 구실을 한다는 고전적 명제가 또다시 적중된 경우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국내 국외 할 것 없이 적용되는 원칙이다.

우리 사정은 현재 어떠한가? 지금부터 정확히 한 세기 전인 1909년 인류의 커뮤니케이션 역사에 기억될 만한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세계 최초로 선박의 조난신호인 ‘에스오에스’(SOS)가 모스 부호를 타고 전송되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인간의 육성이 라디오 방송을 탔다. 2009년 한 해가 인간의 살아 있는 육성을 서로 경청할 수 있는 해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절박한 심정으로 인권의 조난신호를 보내야 하는 해가 되고 말 것인가? 암담한 현실 속 어디쯤에 희망의 빛이 있을까?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09.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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