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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가슴'을 읽는 담론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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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2-01 10:42 조회26,1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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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보통사람’들과 합석할 기회가 생겼다. 인사를 겸해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누군가가 내가 칼럼을 쓴다는 말을 했다. 한 사람이 흥미를 보였다. 어떤 신문에 쓰는가? <한겨레>라고 하자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 물었다. 책도 쓰는가? 인권에 관한 책을 냈다고 하자 또 아무 반응이 없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이런 현상을 ‘이명박 효과’라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나는 전부터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교체되면 사회의 배경음악이 달라진다고 말해왔다.

 

확실히 우리 사회의 배경음악이 지난 한달 새 많이 변했다. 대선 이후 나는 민주·개혁·진보 진영에서 내놓은 갖가지 처방과 대안을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생각 차이가 예상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쟁점들이 과감히 커밍아웃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왜 이런 이야기가 묻혀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다. 사석에서나 떠돌던 논의가 이제 공론의 장에서 활보하고 있다.

 

민주노동당만 하더라도 이른바 종북주의를 둘러싼 노선 투쟁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터져 나올 줄 누가 예상이나 했던가? 사안의 시시비비를 떠나 이런 공론화 자체가 이례적이지 않은가? 정치관과 이념구도에 대해서도 과거와 비교해 대담한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어떤 이는 이제 민주니 진보니 하는 말 자체를 쓰지 말자고까지 한다. 수도 줄고 힘도 빠진 세력이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논리와 언어로 백날 떠들어 봐야 자멸의 길밖에 없다는 거다. 지구화에 대한 태도에서도 엄청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지구화 과정에 동참하지 않고 우리가 과연 생존해 나갈 수 있을지 솔직히 따져 보자고 한다. 지구화, 분배, 복지를 함께 추구하는 게 유일한 살길이라고도 한다. 여러 모로 파격적인 주장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쟁점이 어디 하루아침에 솟아났겠는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속으로 끓고 있다가 대선 패배를 계기로 한꺼번에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백가쟁명식 논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일종의 자기검열 기제를 벗어난 진보개혁 진영의 독립적인 목소리들이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경향을 그저 우경화로 치부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제기를 계기로 진보개혁 진영의 시야를 넓히고 우리 안목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 더 현명한 태도다. 또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과 견제도 과거에 보수진영을 상대하던 것보다 한층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새 정부는 물리적 독재가 아니라 사람들의 욕망과 선호에 호소하는 보수정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진짜 획득해야 하는 것은 새 정부를 상대로 한 정치적 승리가 아니라 일반국민의 ‘가슴과 마음’이다.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 시민들은 정도의 차이와 방법상의 차이를 강조하는 논리에 마음이 끌리기 마련이다. 그러니 예를 들어 우리가 ‘경쟁’을 비판할 때 경쟁 자체를 비판하는 것인지, 대책 없는 경쟁지상주의를 비판하는 것인지를 섬세하게 그러나 단호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만일 후자라면 경쟁논리에 무조건 반대하는 집단처럼 비쳐 사회적 고립을 자초하면 안된다. 경쟁 자체의 장점과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러한 경쟁이 사회 진보를 위해 의미있는 경쟁이 되려면 이러저러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그런 조처 없는 무한경쟁은 자살행위일 뿐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경쟁정책은 이런 것이고 이게 진짜 경쟁이다’라는 식의 적극적인 논법이 필요하다. 세련된 진보개혁 담론의 재구성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조효제/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08.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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