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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이명박 정부엔 여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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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3-05 11:14 조회23,9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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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시민사회와 국가 발전의 당당한 주역입니다. 여성의 사회 참여는 사회를 성숙하게 만듭니다. 양성평등 정책을 추진해서 시민권과 사회권의 확장에 힘쓰겠습니다. 더 많은 여성이 의사결정의 지위에 오를 수 있도록 기회를 늘리고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여성들에게 한 약속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당선 이후 지금까지 보인 행보는 이런 약속과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 조직 개편과정에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려고 했던 것은 차치하고 양성 평등 정책의 상징적인 지표로 읽히는 여성 장관의 수부터 살펴보자. 각료 15명 가운데 여성은 억지로 부활시킨 여성부 장관 한 명뿐이다. 여성 몫으로 남겨뒀다던 환경부도 남성을 장관으로 내정했다. 이는 법무장관 등 핵심 부서에 여성을 발탁했던 노무현 정권은 물론, 김대중 정권이나 김영삼 정권 출범 당시보다도 더 적은 것이다.

 

단순히 수만의 문제도 아니다. 발탁됐던 여성들을 보자. “암이 아닌 것을 축하하기 위해 남편이 선물로 사 준” 오피스텔 등 40여 건의 부동산으로 투기의혹을 받았던 이춘호 여성부 장관 내정자나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했을 뿐” 투기는 한 적이 없다고 강변했던 박은경 환경부 장관 내정자는 결국 낙마하고 말았다. 임명 당시부터 노사문제나 복지문제처럼 복잡한 사회적 갈등을 풀어낼 만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은 논문 표절에 이어 부풀리기 의혹까지 받고 있다. 새 여성부 장관으로 내정된 변도윤씨에 대해서 여성단체들은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과 서울시 산하 여성플라자 운영이 중요한 경력일 정도로 여성정책에 대한 비전과 전문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한다. 첫 여성 인수위원장이었던 이경숙씨는 또 어떤가? 광주학살을 저지른 쿠데타 정권의 국보위에 참여한 ‘화려한 경력’에 걸맞게 ‘오린지’(orange) 소동을 일으키며 온 국민에게 영어 공포증을 안겨줬다.

 

이 대통령의 이런 여성 인선을 두고 “여성은 무능하거나 부도덕해 공적인 일을 할 자격이 없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의도된 행위 아닐까” 하는 음모론적 해석까지 등장한다. 아무리 한나라당이 10년 동안 정권을 내놓고 있었다 할지라도, 대통령과 비전을 같이 하는 능력있고 도덕성도 갖춘 여성이 그 정도로 없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워서다. 실제로 이번 인사파동 이후, 인터넷에는 “여자들이 별 수 있나?” 따위의 여성 폄하 댓글들이 난무하고 있다. 아무리 그렇다손, 음모론이 가당할 리는 없다. 결국 이런 파행은 여성문제나 여성정책에 대한 이 대통령의 인식 부족에 대한 방증에 다름 아니다. “여성을 단순히 구색맞추기 정도로 여겨 폭넓게 인재를 찾지 않고 좁은 인맥 범위 안에서 고민 없이 사람을 선정해 빚은 결과”라고 남윤인순 여성단체연합 대표의 지적은 일리 있다. 이런 인식 부족은 바로 여성 관련 정책에서도 나타난다. 인수위에서 내놓은 국정과제 보고에선 여성가족 정책의 핵심 부분들이 다 사라지고 양성평등 수준 향상 등 추상적인 구호만 남았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선 가족 내 성별 분업이 해체돼 가고,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 확대돼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이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므로 육아 등 가족 돌봄노동을 시장이나 개인에게 맡기지 않고 정부가 직접 나서 지원책을 마련해서 여성의 사회활동 여건을 조성해주는 정책은, 단순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의 이익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 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여성·가족 정책에선 이런 인식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에서 여성의 시계는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권태선 편집인

(한겨레, 2008.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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