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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우왕과 수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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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2-25 09:18 조회23,2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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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 대통령이 취임한다. 국민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지만 그동안 이명박호를 출범시키는 과정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인수위의 여러 정책과 운영을 둘러싼 수많은 비판, 날이 갈수록 가열되는 한반도 대운하 논쟁, 힘겨운 줄다리기 끝에 확정된 정부조직 개편안, 내각과 청와대 인사 검증 외에도 앞으로 새로운 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단기간에 쏟아져 나온 정책들과 여러 가지 변화에 적응하느라 국민들로서도 혼란과 피로감이 적지 않은 두 달이었다.

 

그래서 새 대통령이 이른 시간 안에 정국을 안정시키고 국민들의 뜻에 귀 기울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물론 대통령 자신이 이 뜻깊은 날에 펼쳐 보이는 포부 또한 원대할 것이다. 그러나 그 원대한 꿈 중에는 원점으로 돌아가 재검토해야 할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한반도 대운하 정책이다. 대선에서는 “물길이 통하면 인심이 통한다”는 구호가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문제점이 속속들이 드러난 지금 대운하를 강행하는 것은 국론 분열과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뿐이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의 반대와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 정부는 기어이 대운하를 밀어붙일 태세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와 명분으로 강행하려는 데는 정권의 권위에 대한 집착이 상당 부분 작용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사항을 이제 와 철회하면 정권의 체면은 뭐가 되느냐는 고집과, 임기 안에 무언가 굵직한 공적을 남겨야 한다는 야심. 지금이라도 그 고집과 야심을 버리고 눈과 귀를 열면 문제의 실상이 제대로 보일 것이다. 그것이 이명박 정부가 표방하는 실용주의를 제대로 실천하는 길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치수(治水)는 나라의 근본으로 여겨져 왔다. 하 왕조를 창건한 우왕과 수나라의 양제는 대대적인 수리사업을 벌였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요순시대에 치수를 담당했던 우는 그 일을 잘 감당해 순임금의 아들을 제치고 왕위를 물려받았다. 왕이 된 뒤에도 우왕은 해마다 황하의 범람으로 재해를 입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힘을 썼고, 그 치수의 공적은 후대에 길이 전해지고 있다. 반면, 수양제는 물려받은 경제적 기반을 대운하를 파고 전쟁을 벌이는 데 다 탕진해 버렸다. 수양제의 진취적 기상이나 실험정신은 사줄 만한 대목이 없지 않지만, 그를 망친 것은 지나친 야심이었다. 그는 진시황이나 한무제처럼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길이 남기고 싶어 했고, 그 야심은 결국 민심을 파탄 지경으로 이끌었다.

 

이명박 정부의 성패, 나아가 우리 국토의 운명이 한반도 대운하에 달려 있는 걸 보면 현대에도 ‘물’은 통치의 핵심적 과제로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운하 건설의 꿈은 버릴 수 없는 역사적 과제”이며 “치산치수의 개념과 통한다”는 이재오 의원의 말은 새 정부가 이를 우왕의 치수에 버금가는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결과는 수양제의 파국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런 파국을 맞지 않기 위해서 출발선에 선 새 정부는 지금이라도 냉철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영토가 넓은 중국과는 달리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좁은 국토에서 운하가 과연 필요한지, 정부가 내세우는 경제적 효과나 문화·관광·레저 등의 활성화가 국민의 삶에 얼마나 필요한 요소인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더욱이 대운하 건설이 생태계나 문화재 등 근본적이고 불가역적인 자산 파괴를 대가로 한 것이라면, 원대한 꿈의 목록에서 지우는 게 오히려 용기 있고 지혜로운 선택이 될 것이다.

 

나희덕/조선대 문예창작학과·시인
(한겨레. 2008.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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