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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유인촌 장관이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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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3-25 08:15 조회31,1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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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는 “문화로 소통하고, 문화로 행복해지고, 문화로 삶의 질을 높이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것이 문화부의 캐치프레이즈이다. 문화부의 존재 이유가 거기에 있다.

유인촌 장관도 지난달 29일 취임사에서 “소통되기를 바랍니다. 대립을 부추기는 것들을 없애고 문화부 내에서만이라도 이념이 아닌 인간성에 근거한 문화로 소통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그래야 한다. 그런데 그 이후 계속되는 발언을 통해 국민들은 장관 자신이 대립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다른 부처보다 문화부가 앞장서서 이념에 근거해 소통과 화합에 역행하는 길을 가려고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는다.

문화는 이념을 뛰어넘는 존재

장관 발언의 저변에는 상대적 박탈감이 깔려 있는 것 같은 인상도 받는다. 지난 정부에서 문화권력을 좌파가 독식하고 전횡을 저지른 것처럼 보도하고 부추기는 세력의 발언에 화답하는 것 같은 모양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박탈감이나 결핍감은 느낌이다. 느낌은 현실과 다르다. 장관은 사실관계를 세심하게 살펴보고 조사해서 판단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문화부 산하에는 문화재청을 비롯한 34개의 유관기관과 국립발레단을 포함한 32개의 공공기관이 있다. 66개의 기관장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문화경향성이 다른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편협된 생각인가. 어떻게 문화예술계의 화합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11명 중에 예총 사람은 두 명밖에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나머지 9명은 민예총 사람인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김정헌 위원장이 2005년 위원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 표를 준 사람은 세 명이었다. 민예총 사람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이 세 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총은 회원이 110만명이고 민예총은 15만명인데 어떻게 예산을 비슷하게 줄 수 있느냐는 기사도 있었다. 연감의 통계에 의하면 2005년까지 예총 회원은 15만명이었다. 예술인 인구가 2년 사이에 갑자기 100만명 가까이 증가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채플린은 좌파 배우이다. 사르트로도 좌파 소설가이다. 이들이 나오는 영화는 보지 말고 소설을 읽거나 연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파블로 네루다도 좌파 시인이다. 네루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일포스티노’를 상영 금지해야 하는 것일까. 세계적으로 존경 받는 인물인 스코트니어링도 좌파 지식인이다. 그의 삶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같은 베스트셀러를 서점에서 수거해야 하는가. 피카소의 그림을 소장하지 못하게 하고, 조정래·황석영의 소설을 읽지 못하게 조치해야 할까.

장관 말대로 ‘문화로 소통해야’

문화야말로 이념을 뛰어넘어서 존재하는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고 이념적 시각이 아닌 예술적 시각에서 존중하고 끌어안아야 한다. 유 장관도 “길은 어떤 눈으로 어떤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 그래서 세상도 달라집니다”라고 말했다. 문화예술인들은 이념으로 편을 가르지 않는데 장관이 한풀이하듯 힘으로 문화권력을 교체하려고 앞장서지 말아야 한다. 이미 정권교체를 통해 장관이 문화권력의 핵심에 있지 않은가. 권력을 잡았으니 “문화를 통한 소통과 화합, 문화를 즐기며 문화를 통해 행복해지는 개인, 문화를 통해 발전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국가를 만드는 일”, 그 일에 매달려야 한다.

〈 도종환 / 시인 〉

 

(경향신문, 2008.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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