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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삼성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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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2-04 08:48 조회24,6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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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온국민이 하루에 몇 번씩 감상하게 된 문제의 그림이 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공개된 것은 며칠 전이지만, 언론을 통해 무수히 소개되어 이제는 초등학생도 알아볼 정도가 되었다. 미국 팝 아트를 대표하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만화를 비롯한 대중문화에서 소재를 찾았던 것은 일상적 시각재료들이 대중에게 발휘하는 강력한 현실감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대중문화의 변용을 통해 현대성의 본질을 드러내려는 팝 아트는 그 덕분에 난해한 추상미술과는 달리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재현예술의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라면 엉뚱한 계기를 통해서나마 작가의 의도는 한국 땅에서 충분히 달성된 셈이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림을 들여다볼수록 이상한 착시현상에 빠지곤 한다. 그림의 제목이나 입모양을 보면 분명 너무 행복해서 눈물을 흘리는 표정인데, 내 눈엔 그림 속의 그녀가 왠지 너무 힘들어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00억원 가까운 고가에 팔려 왔지만 알 수 없는 창고의 어둠 속에서 주인도 정체불명인 상태로 모욕을 당하고 있는 것이 이 그림의 운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림의 주인 역시 지금쯤 어디선가 고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 제목이 지닌 아이러니가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삼성그룹이 가입자의 보험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 일부로 그림을 구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도 <행복한 눈물>은 불운하다. 이 그림의 주인이 삼성가냐 아니냐를 떠나서라도 삼성이 호암미술관을 개관한 이래 삼성미술관 ‘리움’ 등을 운영하면서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림이 예술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재벌의 투기와 탈세, 불법 상속의 대상으로 변모해 버린 현실을 바라보며 새삼 예술의 가치와 존재방식을 되묻게 된다.

 

문화기업을 자처해 온 삼성한테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을 던지면서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2003년 교통사고로 타계한 조각가 구본주의 유족에게 삼성화재가 제기한 손해배상 항소사건이다. 당시 삼성화재는 여러 차례 개인전과 초대전을 가진 젊은 조각가의 죽음을 자살로 몰아가면서 예술경력을 인정할 수 없으며 배상기준을 무직자에게나 적용하는 도시 일용노임으로 하고 정년을 60살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예술계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싸웠던 것은 단지 한 개인의 보상금 때문이 아니었다. 이윤 추구를 위해서라면 예술인의 창조적 능력이나 가능성 따위는 짓밟아 버리는 기업의 횡포에 맞서 예술도 사회적 노동으로서 정당하게 존중되어야 함을 밝혀야 했던 것이다.

 

한 손으로는 비자금으로 고가의 미술품을 구입해 세금도 내지 않는 막대한 거래차액을 챙기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보험 배상금을 줄이려고 예술가의 죽음을 향해 모욕에 가까운 흥정을 벌이는 삼성의 이중성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가 바로 구본주 손해배상 항소사건이었다. 결국 삼성화재 쪽이 원심 판결을 따르기로 합의해 소송은 종결되었지만, 그 뒤에도 삼성의 개입으로 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방영이 연기되는 등 마찰이 적지 않았다.

 

<행복한 눈물>을 둘러싼 의혹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관심의 초점은 온통 그림 한 점에 쏠려 있지만, 에버랜드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수만 점의 미술품을 어떤 자금과 경로로 소장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이라도 삼성은 그동안 예술을 매개로 재산을 어떻게 숨기고 부당하게 증식했는지를 스스로 밝혀야 한다.

 

 

나희덕/시인·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한겨레. 2008.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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