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 싱가폴에서 해후한 한반도 평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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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3-14 17:20 조회28,87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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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폴에서 해후한 한반도평화론
최원식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서남포럼 운영위원)
싱가폴에서 부러운 것 가운데 하나가 동남아연구소(ISEAS: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다. 지난 2월 중순, 신윤환교수의 안내로 아이씨즈를 둘러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던 것인데, 싱가폴국립대(NUS: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캠퍼스를 구경한 뒤끝이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NUS의 도서관도 멋지지만 탁 트인 장소에 다양한 음식을 싸게 제공하는 많은 가게들이 경쟁하는 학생식당 또한 일품이었다. 한 업체가 독점한 한국 대학들의 구내식당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다. 한국의 대학 관계자들이 수도 없이 NUS를 방문했을 터인데 어째 이 좋은 제도는 도입하지 않는 걸까? 나의 한탄에 신교수는 재단이사장님들께서 보아야지 소용없다고 농담 비슷이 응수한다. 학생식당에서 시원한 과일쥬스를 마신 뒤 찾아간 아이씨즈에서 나는 한국의 연구소들을 떠올리지 않을 없었다. 아이씨즈가 대학 부설 연구소가 아니라, 싱가폴정부와 싱가폴국립대가 주축이 되어 이끄는 독립기구임을 일깨워준 신교수의 위로 아닌 위로가 왜 위로가 되지는 않는 걸까? 1968년 설립 이래, 이제 아이씨즈는 안전보장, 경제발전, 정치․사회적 변화 등 현대 동남아시아가 당면한 다양한 주제를 토론하는 세계적인 지역연구센터로 성장했다.
아이씨즈를 떠나면서 우리는 구내서점에 들렀다. 한켠에 낯익은 얼굴들을 표지로 한 소책자들이 죽 진열되어 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진이 눈에 뛰어든다. 타향에선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지 않은가. 제목은 ‘한반도의 평화와 동아시아’. 들춰보니 DJ가 2000년 11월, ‘싱가폴강연’(the Singapore Lecture)에서 행한 연설문을 아이씨즈에서 다음해 출간한 것이다. 나는 싱가폴에 머무는 틈틈이 이 소책자를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개회사는 리 시엔 룽(李顯龍) 부총리(현재는 총리), 아다시피 그는 리 콴 유(李光耀) 전 총리의 아들이니 일종의 세습인 셈이다. 그런데 연설문은 이런 선입관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히 훌륭했다. 그는 DJ가 이 포럼에 초청된 최초의 남한 지도자라는 점을 먼저 부각한다. 아다시피 이 강연이 이루어진 2000년은 6.15남북정상회담의 개최와 뒤이은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DJ와 한국의 위상이 국제적으로 상승한 해이다. 그런데 그는 DJ의 정치적 경륜보다는 1997년 겨울, 한국을 엄습한 IMF사태를 치유한 경제개혁, 즉 “정부, 은행들, 그리고 재벌들 사이의 긴밀한 관계들에 기초한 남한의 기존 경제발전 모델”의 파산을 치유한 구조조정에 더 중점을 두어 소개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주변 4강을 설득, 남북의 긴장을 해소할 평화의 이정표를 세운 DJ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한반도의 평화가 어떻게 동아시아의 공영(共榮)에 영향을 미칠지, DJ의 연설을 청하는 것으로 개회사를 마무리한다.
이어지는 DJ의 강연 또한 ‘국민의 정부’ 출범(1998) 후 6.15에 이르기까지 ‘햇빛정책’의 진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일류의 연설이다. 이 주제에 무심한 외국인들뿐만 아니라 절실한 당사자인 한국인에게도 아주 유익한 읽을거리인데, 그는 우선 햇빛정책의 3원칙을 다시 확인한다. 첫째 남한은 북한의 어떤 군사적 도발도 용납하지 않는다, 둘째 남한은 북한을 흡수통일하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다, 셋째 남북한은 평화적 공존과 평화적 교류를 위해 힘써야 한다. 그런데 이 정책에 대해 북한은 처음부터 좀체 의구심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이 베를린선언을 계기로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밝힌다. 2000년 3월 베를린자유대학에서 햇빛정책 3원칙을 다시 천명하는 한편, 서독이 동독을 합병하는 통일을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독일식 통일의 상징이랄 베를린을 택해 다른 통일을 호소한 노련한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 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순항, 드디어 6.15에 도착한 터인데, 남의 남북연합과 북의 느슨한 연방제의 유사성에 주목하여 극적인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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