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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사회적 응집력'을 도외시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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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1-11 09:47 조회29,1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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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난 직후 나는 본 지면을 통해 대통령 당선인이 전광석화와 같은 패러다임 전환공세로 여론의 혼을 빼놓을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걱정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나타난 것을 토대로 새 정부의 국정운영을 스타일과 내용이라는 측면에서 예상해 보자.

 

국정운영의 스타일. 새 정부의 스타일은 일방주의, 절제의 결여, 성과 물신주의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집행기관이나 된 듯이 인수위원회가 하루가 멀다 하고 새 정책을 내놓는 모습을 보라. 대운하에 관한 언동은 이 나라가 민주국가인가 싶을 정도로 기고만장하다. 결론은 이미 내려졌고 첫 삽 뜨는 일만 남았다는 둥, 3년 내 완공하겠다는 둥, ‘미친 놈’ 소릴 듣더라도 추진하겠다는 둥, 갈수록 태산이다. 정식 취임도 하지 않은 예비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마치 철거현장의 용역 깡패와 같은 협박을 일삼고 있다. 또한 새 정부의 설계 과정에 국민의 참여 통로가 너무 막혀 있다. 인수위가 만들어 놓은 국민성공정책제안 사이트에는 현재 만 건 가까운 제안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게시판을 만들어 놓으면 뭣 하는가. 예컨대, 조회수가 7천 건이 넘는 어느 비정규직 노동자의 하소연 따위는 아예 고려 대상이 되지도 못할 것이다. “포퓰리즘 지양을 위해 정책에 대해서만 제안을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정부 스스로 설정한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국민의 요구는 ‘포퓰리즘’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국가원수라는 막중한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공사 구분, 정교 분리라는 대원칙을 무시하는 위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런 식의 일방통행, 공인 자질 결여, ‘여의도 정치’ 즉 의회정치에 대한 혐오는 대국민 의사소통 채널을 스스로 좁힐 수밖에 없다. 국민의 기대를 한껏 높여 놓은 경제적 성과가 환상으로 판명되는 순간 일방주의 정치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국정운영의 내용. 새 정부는 실용, 자유시장, 친재벌, 경쟁을 금과옥조로 신봉한다. 거의 완벽한 신자유주의적 경쟁체제이다. 이렇게 ‘순수한’ 노선이 바람직한가 하는 논의는 일단 미뤄두자. 근본적인 가치관의 차이를 문제 삼기 때문이다. 백보를 양보해 이런 노선이 실현 가능한가, 라고 물어보자. 대답은 ‘아니오’다. 몇 년 전 세계은행이 똑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정치인들이 좋은 정책이 뭔지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세계은행이 규정한 ‘좋은’ 정책이란 안정되고 개방적인 거시경제 환경, 책무성 있는 법·정치·금융 제도, 보건·교육·사회안전망에 대한 투자와 같은 것이었다. 크게 보아 신자유주의적 패러다임을 반영하는 개념 규정이다. 세계은행은 이런 정책을 수행하고 개혁을 달성하려면 정치적 운신의 여지가 있어야 하는데, 현실에선 반대로 정치적 운신을 제약하는 요소가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왜 그런가? ‘사회적 응집력’이 낮을 때 정치적 운신의 폭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회의 응집력이 높아야 법·정치·금융 제도의 질이 높아지고, 제도의 질이 높아야 성장정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 응집력은 어떻게 판별할 수 있나? 사회적 응집력은 전 사회의 포용성, 정치에 대한 신뢰, 개혁을 위한 자발적 협력으로 나타나며 그것을 위해서 성장과 형평성의 조화가 필수적이다. 즉, 무원칙한 경쟁과 배제의 논리로 사회적 응집력을 파괴해 버리면 신자유주의적 정책조차 추진할 수 없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일방주의적 정치와 사회적 응집력을 도외시하는 경쟁 지상주의가 새 정부 국정운영의 스타일과 내용을 규정한다면 우리 공동체의 미래에는 이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조효제/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08.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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