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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덜 완벽한' 국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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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2-22 14:45 조회23,4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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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개인의 자유를 원하면서도 집단적 정체성에서 위안을 느끼는 이중적인 존재다. 집단적 정체성 중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형태는 국가다. 지난 열흘 사이 국내외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국가는 인류에게 여전히 중차대한 현상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선 오스트레일리아의 노동당 정부가 애버리지니 원주민에게 공식 사과를 한 사건을 보자. 알다시피 백인들은 이주 초기부터 그 땅이 ‘테라 눌리우스’, 즉 무주공산이라는 억지논리를 펴면서 원주민을 탄압했다. 하지만 원주민은 1920년대 이후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면서 경제적 자율권 투쟁과 자유주의적 전술을 모두 동원하였다. 수도 캔버라의 연방의회 앞에서 애버리지니 천막대사관을 치고 농성을 벌였고 90년에는 임시정부를 선포하고 자체 여권을 발행하기도 했다. 이들의 행동은 결국 일국내 자기결정권 투쟁으로 귀결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수립이라는 상징적 요구가 일정한 구실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국가 형성의 고비를 겨우 넘기고 있는 코소보를 보자. 코소보 의회의 독립선언문에는 유혈분쟁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작은 집단의 고뇌와 희망이 애처롭게 드러난다. 주권국가로서 독립을 선언하면서 유엔과 국제사회의 지원과 협력을 고대하고 국제사회의 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고 강조한다. 또한 세르비아와의 근린우호 관계를 돈독히 하겠으며(11조),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을 제정할 것이고(4조), 특히 다민족 공화국으로서 모든 공동체의 차별 없는 권리를 보장하겠다고(2조) 약속하고 있다.

 

국가 형성 이후를 잘 관리하지 못해 대통령 암살기도 사건까지 일어난 동티모르는 또 어떤가. 2002년 독립 이후 미숙한 정치, 통제 불능의 군과 경찰, 엄청난 실업률, 만연한 폭력문화 등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역사상 유엔이 직할통치한 유일한 국가이면서, 국민 형성과 국가 형성을 동시에 이루어야 하는 이 나라의 복잡한 사정은 딱하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국가공동체 문제가 공간적·시간적으로 중층적으로 얽혀 있는 한반도의 사례도 있다. 통일부 존치, 통일부 장관 내정자의 적격성 여부로 남한사회에서 촉발된 논쟁은 우리에게 한반도의 현실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최근의 국내외 정세에서 몇 가지 일반적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지구화로 국가간 장벽이 낮아졌지만 근대적 기획으로서의 국가체제를 지향하는 움직임은 줄지 않았다. 우리 살아생전에 이런 경향이 역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식으로든 국가체제에 관한 문제가 정리되지 않으면 시간이 흐르더라도 이 문제가 사라지기는커녕 근본적인 의미에서 남북한 정치공동체 존립 자체의 발목을 잡을 이슈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국가의 개체수가 증가하는 현상은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자기결정권의 논리가 통용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집단의 자기결정권이 그 집단 내 개인의 자유를 짓밟는 집단우월권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좋기로는, 내부적으로 개인의 선택권을 완전히 보장하면서 외부적으로 집단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셋째, 국가체제 내의 시민권 개념으로만 처리하기 힘든 미묘한 문제들이 대폭 늘어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외국인 이주노동자, 국제결혼, 다문화 사회, 디아스포라 공동체, 다중적 정체성을 가진 개인 등은 일국적 시민권을 넘어서 초국적 인권 개념으로만 다룰 수 있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 국가의 소멸과 같은 주장은 현재로선 탁상공론에 불과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는 진정한 인권적 발상을 통해 복합적이고 유연하고 ‘덜 완벽한’ 국가체제를 모색해야 할 요청을 받고 있다.

 

조효제/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08.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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