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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성장'과 '무장'이라는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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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07-26 17:16 조회27,3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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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성장’과 ‘무장’이라는 신화

 

나희덕 / 시인 · 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

 


제주와 평창은 최근 지면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지역들이다. 제주는 해군기지 건설을 두고 주민 사이 갈등뿐 아니라 정부와 시민단체의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평창은 2014년 겨울올림픽 유치를 놓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러시아의 소치에게 쓴잔을 마셔야 했다. 그런데 평창이 비통함에 젖어 있거나 재도전의 결의를 다지는 동안 정작 소치에서는 환경보호 단체들이 환경 파괴를 들어 겨울올림픽을 반대한다는 소식이 날아온다. 소치의 승리가 마지막까지 불분명했던 것도 단기간에 경기장을 열한 가지나 지어야 하고, 그것을 건설할 지역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자연보호구역에 인접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환경단체들이 겨울올림픽 평창 유치운동을 두고 비판 목소리를 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환경단체까지 포함한 국민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 평창유치위가 내세운 강점 중 하나였다. 국토의 남은 허파라고 할 수 있는 평창의 깨끗한 숲과 계곡이 파헤쳐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는 국익을 앞세운 개발주의에 묻혀버린 셈이다.

 

그래도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두고서는 반대하는 성명서나 기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지키려는 노력은 단순히 생태적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제주의 자연뿐 아니라 역사, 외교적 입지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할 때 해군기지 건설이 얼마나 파괴적인 행위인가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해군기지 건설은 제주의 자연과 민심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전초기지로서 동북아 평화체제를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 정부는 4·3 항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기여하고자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바 있다. 그리고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시키고자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못지 않게 공을 들였다. 덕분에 6월 말 제주의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제주의 자연을 살리기 위해 ‘소리 없는 문화전쟁’을 치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 섬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운동경기장도 아니고 하물며 군사기지라니, 이건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 지정을 철회하고도 남을 일이 아닌가. 제주도에 대한 이와 같은 분열적인 정책은 국제사회의 이해나 동의를 받기도 어려울 것이다.

 

물론 정부나 대통령의 해명이 없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제주는 평화의 섬이라고 강조하며, 바로 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해군기지 건설을 통한 ‘무장’이 필요하다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 논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강행하면서 국민경제의 양극화나 농업의 몰락 등을 감수하고라도 ‘성장’을 위해서는 무한대의 ‘개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것과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성장’과 ‘무장’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자유무역협정이든 올림픽이든 군사기지든, 일단 유치하고 보자는 태도가 과연 장기적인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묻고 싶다. 이런 밀어붙이기식 정책은 정권 말기의 조급증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나라를 제대로 이끄는 데 필요한 깊이있는 안목과 철학을 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 점에서 제주와 평창이라는 기표 뒤에 자리잡은 정부의 두 얼굴은 별로 다르지 않다.

 

(한겨레, 200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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