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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동아시아의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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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12-07 14:37 조회29,1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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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동아시아의 지도자 / 최태욱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국계관계학과 교수 

 
‘역제주의’(interregionalism) 시대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세계의 정치경제 질서가 국제(국가간)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역제(지역간) 관계에서 결정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주된 행위자는 국가보다는 지역(연합체)이다. 유럽인들은 이미 대내외 정책의 상당 영역을 개별 국가가 아니라 단일 지역행위자인 유럽연합(EU) 이름으로 집행하고 있다. 유럽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역행위자는 동남아·중남미·남아프리카·중동 등 세계 각 지역에서 부상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자유무역협정(FTA) 상대를 일별해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북유럽의 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 동남아의 아세안과는 이미 협정을 체결하였거나 거의 완성 단계에 있고, 유럽연합과는 협상 중이며, 남미의 메르코수르와 중동의 걸프협력회의(GCC)와는 협상을 준비 중이다. 각 단계에 있는 총 열네 협정 상대 중의 다섯, 곧 35.7%가 국가가 아닌 지역행위자인 것이다. 세계적으로 지역행위자의 수와 세가 어느 정도 증대되었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우리는 역제주의 시대의 도래를 준비하고 있는가? 일국주의만으로 그 시대를 살아낼 자신이 있는 게 아니라면 우리 역시 이웃 나라들과 더불어 당당한 지역행위자를 구성해 가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동아시아 지역주의를 도모했다. 1997년 동남아 10개국과 동북아 3개국이 형성한 ‘아세안+3’ 협력 틀을 활용하여 동아시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그것을 종국에 동아시아 공동체로 발전시켜 가자는 구상이었다. 이 구상에 대한 역내국 모두의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상당 부분 그의 탁월한 리더십 덕분이었다. 당시의 그는 분명히 한국을 넘어 지역 전체를 시야에 넣은 동아시아의 지도자였다.

 

그의 구상에 기초한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발전은 느리긴 했어도 꾸준했다. 중국에 이어 한국과 일본이 각각 아세안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기로 결정한 즈음에는 드디어 지역행위자로서의 동아시아 출현이 임박한 듯도 했다. 그러나 2005년 아세안+3과는 별도로 거기에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인도 등의 역외 국가들이 추가된 동아시아 정상회의(EAS)가 새로이 출범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주의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동아시아 공동체로 이어질 기본틀이 아세안+3인지 동아시아 정상회의인지를 놓고 역내 국가들, 특히 중국과 일본 사이에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역주의 발전의 ‘심화 먼저 확대 나중’ 원칙에 따라 아세안+3을 우선 공고히 해야 한다는 중국의 주장에 대체로 동조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원칙이 그렇다고 말할 뿐 구체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나타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2년이 흘러갔다.

 

지난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3은 각별히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10주년을 기념하여 뭔가 타개책이 나올 수도 있다는 기대가 모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 대한 기대가 상당했다. 과거 김대중 정부 아래서 아세안+3의 발전을 주도했던 한국이 그 리더십을 다시 발휘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였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끝까지 동아시아의 지도자는 아니었다. 그의 시야에 든 것은 오직 한반도, 기껏해야 동북아의 안보문제까지였다.

 

역제주의 시대를 이끌어갈 동아시아의 지도자를 우리 내부에서 찾는 것은 앞으로도 당분간은 허망한 일일 듯 싶다. 작금의 대선 정국이 보여주듯 우린 국내의 지도자조차 쉽게 찾지 못하는 형편에 처해 있다. 궁금하다. 세계적 수준의 정치 지도자를 지속적으로 배출해낼 수 있는 방안은 대체 무엇일까?

 

(한겨레, 200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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