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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국민 섬김 정부'의 실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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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1-09 09:35 조회28,2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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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이명박 당선인은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에서 열린 ‘대통령 당선 감사예배’에 참석해 가장 모범적인 지도자는 예수라고 말하며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던 예수를 본받아 자신도 국민을 섬기는 지도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역시 기회 있을 때마다 ‘섬기는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다. 만약 이들의 다짐대로 차기 정부가 진정 예수를 역할모델로 삼아 국민을 섬기겠다고 한다면 이는 매우 다행스럽고 심지어 감사하기까지 한 일이다.

 

사실 우리 국민들의 대다수는 민주화 이후에도 섬김을 제대로 받지 못해 왔다. 자신들의 ‘대리인’인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스스로 선출할 수 있었으나 막상 그 대리인들이 주인인 국민의 평안과 복지 증대를 위해 온 정성을 다하지 않거나 못할 때는 그저 속수무책이었다. 이러한 대리인의 태만 혹은 무능은 특히 힘없고 돈 없는 일반 서민들을 자주 안타깝게 했고 때로는 분노케 하였다. 이번 대선 결과도 상당 부분 바로 그 분노의 폭발 때문이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10년을 싸잡아 ‘잃어버린 세월’이라고 하는 한나라당의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려울지라도 그 논거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는 10년간의 양극화 심화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기간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졌고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 그리고 빈곤층의 규모는 급증하였다. 진보를 자처하며 약자 편에 서겠다던 두 정권 아래서 약자와 소외자는 오히려 더 많이 양산됐으나 그들은 국가나 사회로부터 마땅한 보호도 받지 못하였다. 정부는 국민의 대다수인 약자보다는 소수에 불과한 강자를 섬기는 듯했다. 자신을 섬기지 않는 대리인을 계속 두고 써보자는 주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정권 교체가 일어난 까닭이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을 섬기겠다고 한다면 무엇보다 약자 배려에 힘을 쏟을 일이다. 그것이 ‘국민 섬김’의 핵심 내용이다. 예수의 섬김 대상도 강자가 아닌 약자였다.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를 돌보라는 것이 예수의 지상명령이 아니었던가. 우선 한나라당 스스로가 가장 심각한 사회경제 문제라고 지적했던 양극화 해소에 앞장서야 한다. 그러자면 경쟁 시장의 효율성과 수월성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 사회의 형평성과 공공성에 눈을 돌려야 한다. 예컨대, 교육이나 의료 서비스 등은 경제적 약자도 (그가 단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자와 큰 차이가 없는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이런 섬김은 오직 복지와 사회정책의 강화를 통해서만이 가능한 일이다. 최근 실시된 ‘국민의식’ 설문조사를 보더라도 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경제적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31.6%)보다는 ‘사회복지가 잘 갖춰진 사회’(67.2%)를 더 선호하고 있다(<한겨레> 1월1일치).

 

이명박 정부가 과연 복지사회를 염원하는 우리 국민들을 제대로 섬길 수 있을 것인가? 방법은 하나다. 신자유주의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규제완화, 민영화, 시장개방, 정부 개입의 최소화 등이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의 비법이라는 해묵은 주장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과실을 독과점할 수 있는 극소수의 초국적 세력들이 유포하고 있는 허망한 이념에 불과하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을 섬기는 데 유용하다면 규제를 강화하기도, 민영화를 억제하기도, 시장개방의 폭과 속도를 줄이거나 늦추기도, 조세 부담률을 높이기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의 시장 조정 권한을 융통성 있게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 섬김 정부’가 택해야 할 실용주의의 요체는 바로 이것이다.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겨레, 2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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