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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겨레말로 성찰하는 ‘통이(通異)’ - 정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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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07-26 17:08 조회30,0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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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로 성찰하는 ‘통이(通異)’
[인터뷰]정도상 겨레말큰사전 남측편찬위원회 상임이사


2005년 겨울, 남북의 사전편찬 전문가들이 금강산에 모여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위한 결성식을 가진 이후 세 번의 겨울이 지나고, 올 해 4월 2일(월)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동안 사단법인으로 운영되어 오던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가 특수법인으로 전환되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법의 지원을 받는 최초의 남북민간교류 사업이 된 것이다.

 

민족공동어 사전을 만드는 거대작업에, 소설가이면서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남측편찬위원회의 중심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정도상 상임이사를 만났다. 

 

 

최근에 있었던 겨레말사전사업회법 통과를 우선 축하한다. 법 통과 이후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는가?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이창동 장관 시절이었다. 그런데 초기에 이 사업을 제안했던 ‘통일맞이’(문익환기념사업회)는 재정적 한계와 단체 성격상 직접 사업을 추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정부가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정부가 이 사업을 직접 수행하기에도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일단 남북의 어문 규범이 다른 것이 문제였다. 한글 맞춤법은 물론, 사전의 가나다라 순서도 달랐다. 정부가 나서서 북이랑 합의하여 이 부분을 통일시키면 국내 기존 모든 사전을 새로 찍어야 하고 초중고, 대학교까지 모든 교과서의 문법체계가 달라져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그래서 민간이 먼저 중간 단계를 거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통일맞이가 특별위원회(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 남측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예산 문제의 어려움은 계속 남아있었다.

 

일 년에 30억 이상의 재원이 소요되는데, 첫 해 예산은 통일부와 합해 7억 정도 밖에 받지 못했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사전에 들어갈 말이 30만 단어 이상인데, 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말대사전에서 공통되는 부분 20만 개를 찾아내고, 나머지 10만 개는 각 지역어에서 새로운 어휘를 찾아서 올려야 한다. 새로운 어휘는 1900년대부터 2000년까지 발표된 시와 소설(문헌)에서 찾고, 각 지역의 현장조사를 통해 지역어를 찾기로 했다. 현장조사와 문헌조사에는 인력이 필요하고 그것은 곧 인건비라는 예산과 연결된다. 그런데 이런 사업 추진을 위한 토대가 부족했다.

 

사업추진에 위기의식을 느낀 후, 우여곡절 끝에 민간단체에서 정부 출연 특수법인으로 전환이 되었다. 민간단체일 때 가졌던 느슨함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책임이 주어졌다. 이것이 법 통과 이전과 이후의 달라진 상황이라고 생각이 든다. 또한 더 이상 이 사업이 정치, 경제적 상황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한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언어 속에 숨겨져 있는 언어의 속살들은 곧 민중의 삶의 기록이다"

 

이 사업은 고 문익환 목사의 1989년 평양을 방문 당시 김일성 주석에게 <통일국어대사전> 편찬 제안이 계기가 되어 2004년 공동편찬사업회가 공식 출범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보다 먼저 당초 고 문익환 목사님이 통일국어사전을 제안했던 근본적 이유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문익환은 통일운동의 선구자,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시인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익환은 윤동주 시인의 오랜 친구였다. 문목사는 친구의 이른 죽음에 대한 아픔을 오래 간직했다.

 

그러다 60년대 중반 문목사가 구약성서 신구교 공동번역 작업에 참여해 히브리어 원전 성경을 가져다 놓고 구약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데 그 때 시를 다시 공부하게 된다. 이때 히브리어의 현실과 한국어의 현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구약성서의 40%가 시로 이루어져 있다. 언어 속에 숨겨져 있는 언어의 속살들, 즉 시의 속살들이라 하는 것은 곧 민중적 삶의 기록인데, 이 속살들을 대면하면서 비로소 시에 가까워진다. 이후 시에 가까워 지는 단계로 릴케 시집을 번역해서 출판하고 53세 때 처음으로 시를 발표하고 첫 시집을 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 글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고 감옥에서도 ‘어떻게 하면 한국어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수 없이 한다. 이렇듯 문익환이라는 개인 안에 한국어에 대한 사랑과 언어학적 깊이가 존재했기 때문에 (방북 당시) 김일성 주석을 만나서 사전 사업을 제안했을 것이다. 이런 내적 동기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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