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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국가가 시장을 조정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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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07-26 17:14 조회28,6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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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국가가 시장을 조정케 하라!

 

최태욱 / 한림국제대학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모든 자본주의 나라는 각기 서로 다른 시장경제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큰 분류는 가능하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자유’ 시장경제 체제와 ‘조정’ 시장경제 체제로 나누는 것이다. 영미식이라고도 불리는 앞엣것은 시장과 거기서의 자본의 자유를 절대적 가치로 신봉하는 반면, 유럽식이라는 후자는 시장과 자본에 대한 국가 혹은 사회의 조정 필요성을 강조한다. 물론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해당 국가의 구성원들이 경제적 효율성을 우선시한다면 아마도 전자가, 사회적 형평성을 중시한다면 뒤엣것이 더 적당할 것이다.

우리는 어느 쪽을 지향해 왔는가? 헌법 119조 2항을 보면 알 수 있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사이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곧 우리 헌법은 경제 민주화를 위해 가해지는 시장 규제와 조정을 국가의 주요 권한으로 명시하고 있다. ‘조정’ 시장경제 체제의 확립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자유시장 체제와 조정시장 체제의 불편하고 어색한 만남이라 할 수 있다. 자유시장 체제의 세계적 확산을 주도하는 미국으로서는 무엇보다 헌법이 부여한 한국 정부의 시장 조정 권한을 꺼릴 것이다. 그리고 그 권한을 한사코 축소 혹은 무력화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사실 협정에는 이미 그런 효력을 가진 독소조항들이 상당수 들어가 있다.

 

예컨대 ‘투자자-국가 제소제’는 한국의 규제나 공공정책 등이 ‘간접수용’ 등에 해당되어 자신의 투자이익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미국인 투자자가 우리 정부를 국제중재부에 언제든 제소할 수 있게 한다. 또 ‘비위반 제소제’는 우리 정부의 특정 조처가 협정 위반은 아니지만 그것이 자국의 합리적 기대이익을 침해한다고 판단할 경우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를 국제재판부에 불러낼 수 있도록 한다. 우리의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미국 민간인들과 정부의 잦은 제소 가능성 때문에 규제나 공공정책 수행 과정에서 크게 위축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편 ‘역진 방지 기제’라는 ‘래칫 조항’은 협정 체결 때 유보 목록에 들지 않아 자동 개방으로 간주되는 현재와 미래의 모든 서비스 영역은 이후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 닫을 수 없도록 한다. 설령 미국 자본의 자유로운 침투로 말미암아 사회 공공성 훼손이나 해당 산업의 위축 또는 양극화 등의 문제가 심각해진다 할지라도 우리 정부는 개방을 철회하거나 그 폭을 줄이는 등의 방식으로 시장을 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 협정으로 새로이 도입될 이질적인 제도·정책·규범 등은 실로 무수하다. 이로써 적게는 40여 가지에서 많게는 100여 가지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대부분 우리 정부의 정책 자율성 축소로 연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의 시장 조정을 통한 약자 보호와 경제의 민주화를 강조해 온 우리 헌법 정신의 훼손은 상당 부분 불가피할 것이다.

 

물론 ‘자유’ 시장경제 체제로의 지향점 전환이 우리 국민이 원하는 일이라면 문제될 건 없다. 그러나 그 일이 지금과 같이 국민적 합의 없이 국제협정만으로 진행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제헌절이 다가온다. 국회가 제발 부끄러운 제헌절을 맞지 않길 바란다. “국가가 시장을 조정케 하라!”는 선배들의 당부를 명심하시란 말씀이다.

 

(한겨레, 200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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