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렬]탈원전‧에너지전환은 비둘기보다 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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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1-07-28 13:33 조회7,99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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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말 독일이 원자력연구를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한 후 약 20년간 독일의 원자력 연구자들은 하고 싶은 연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이들은 칼스루에와 윌리히 등지에 설립된 원자력 연구소에 연구용 경수로와 중수로를 수십개 설치했고, 토륨을 연료로 사용하는 고온로를 개발하여 건설했고, 고속증식로를 개발했으며, 핵주기의 완성으로 여겨지는 우라늄 농축부터 사용후 핵연로 재처리까지 손대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와 함께 상업용 원자력발전도 매우 빠른 속도로 확대됐다. 1960년대 초부터 1980년대 말까지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독일 전역에는 30여개의 원전이 들어섰으며, 그 결과 원자력의 비중은 전체 전력의 30%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부터 불붙기 시작한 원자력 반대운동과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영향으로 원자력발전이 정체 상태에 들어서자 원자력연구소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변화의 핵심은 명칭에서 원자력이라는 말을 떼어내고 연구 분야를 기초과학과 재생가능 에너지로 크게 확장하는 것이었다. 윌리히 연구소는 1990년 원자력연구센터라는 이름을 윌리히 연구센터로 바꾸었고, 칼스루에 원자력연구소는 칼스루에 환경‧기술연구센터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칼스루에 연구센터로 한번 더 변경한 후 2006년에는 칼스루에 공과대학과 통합했다. 이러한 변신을 거쳐 현재 윌리히 연구센터에서는 3000명의 연구원이 생물학, 지질학, 기후학부터 양자물리학과 태양광까지 과학의 거의 전 분야를 연구하고 있고, 원자력 분야의 연구로는 원자로 안전과 핵폐기물 처분 관련 연구만을 하고 있다. 고속증식로를 개발하여 실증로까지 건설하고, 소규모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가지고 있던 칼스루에 연구소도 마찬가지로 과학연구를 광범위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 중에서 원자력과 에너지 관련 연구로는 1800명의 연구원이 재생가능 에너지, 핵융합, 원자로 안전, 핵폐기물 처분 연구 등을 수행하고 있다.
독일 원자력연구소의 변화에서 주목할 점은 변화가 2011년 독일정부의 완전한 탈원전‧에너지전환 결정 훨씬 전부터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는 연구소 책임자와 중진 연구원들이 원자력연구에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원자력연구소들은 변신 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기초과학과 에너지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연구소로 성장했고, 윌리히 연구소에서는 2007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까지 배출했다.
한국도 2017년에 독일과 마찬가지로 탈원전‧에너지전환을 선언했다. 그러나 선언 후 4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독일과 달리 원자력연구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팽창하고 있는 것 같다. 원자력연구원의 정부 출연금, 예산, 임직원수는 지난 4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원자력 관련연구도 계속 확장됐다. 소형원자로(SMR), 소듐냉각고속로, 고온가스로, 수소생산용 초고온가스로, 사용후 핵연료 파이로프로세싱 등 원자력연구의 첨단으로 여겨지는 연구가 대규모로 수행되고 있다.
이렇게 원자력 연구가 전보다 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원자력 연구자들은 탈원전 정책에 대규모로 저항하고 있다.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저항이 두명의 야권 대선주자를 등장시키기에 기여한 데에는 정부의 책임도 없지 않다. 대단히 강한 기득권을 가진 엘리트로 우리사회에 두텁게 자리잡고 있는 이들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고민이 없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부는 이들에게 계속적인 연구 지원과 원전 수출이라는 출구를 열어주면 저항이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럴수록 이들은 탈원전을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강하게 품고 여러 수단을 사용하여 탈원전 무산을 시도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탈원전과 에너지전환을 달성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원자력 기득권 세력의 힘은 매우 강하고, 재생가능 에너지 자원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탈원전‧에너지전환을 성공시키려면 비둘기의 순결함이 아니라 뱀의 영리함으로 무장하고 접근해야 한다.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이투뉴스 2021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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