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영] 머리띠를 묶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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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07-26 15:26 조회21,98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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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망대] 머리띠를 묶기 전에
이일영 /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은 지난해 ‘대연정’ 제안처럼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재계는 오히려 반신반의하며 품목별로 이해득실을 계산할 것이나, 한-미 동맹에 일편단심 목매는 세력들은 뜻밖의 소식에 소리 없는 열광에 빠져들고 있다. 완고한 국내 기득권층과 집요한 미국은, 직관적이고 무모한 한국 정부를 맞아 이인삼각으로나마 새로운 형태의 삼각동맹을 추구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대연정’은 그간 분열을 거듭하던 운동들에게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가 중대 사안에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를 봉쇄했기 때문에 운동들은 이제 명확한 전선으로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머리띠를 묶기 전에 몇 가지 점은 살펴야겠다.
먼저, 자유무역협정은 지역통합의 주요한 ‘수단’이라는 점이다. 지역통합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차원과도 함께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유무역협정은 경제적 차원에서 지역통합을 추진하는 가장 주요한 수단이지만, 여기에 정치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협정을 통해서 시장 확대, 경쟁력 강화 등 효과도 거두어야 하지만, 경제 효과가 국제 평화를 확장하도록 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좋은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지역통합으로 가는 경로를 찾아야 한다. 이는 남북한 통합의 수단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경제적 교환이 정치적 갈등을 축소시키는 것만은 아니다. 경제적 ‘상호의존’과 ‘비대칭성’이 너무 커지면, 이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면 어느 한편에서 이러한 관계에서 탈출하려는 유인을 갖게 되고 갈등을 발생시킨다. 그러므로 자유무역협정은 비교적 위험이 작은 경우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한국으로서는 번영과 평화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파트너로 아세안 국가와 일본을 생각하는 것이 우선이다.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한-미, 한-중, 남북한간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는 신중하고 차분한 자세로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운동들은 경제적 불평등과 폭력을 제어하는 대안적 정치경제 형성의 사례와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된 농민운동의 예를 들어보자.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는 지금까지의 농민운동의 대안 없는 투쟁을 비판하면서 ‘햇빛농업’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이에 대해 박웅두 곡성농민회 부회장은 ‘농민’으로서 반론을 제기했다. 초국적자본과 국가권력에 의한 개방화·세계화가 본질적 문제이며, 유기농·친환경농업은 대안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한겨레> 3월18일치). 그런데 이러한 논리는 비판-대안제시에 대해 다시 비판으로만 대답하는 것이다. 투쟁이 ‘우산’ 역할을 한다면, 그 우산 아래에서 비를 피하면서 자랄 수 있는 변화의 씨앗과 희망도 말해야 한다.
이제 누구나 여권과 가방을 가지고 있으니, 여행을 ‘잘’ 하는 것이 문제다. 그런데 정부는 올 10월까지 한-일 자유무역협정 협상은 재개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칠레, 일본 등 누구와의 어떤 자유무역협정도 모두 ‘악’으로 치부하는 운동 경향도 있었다. 마음에 꼭 드는 방책이 아니라고 해서, 새로운 대안의 가능성을 함부로 일축해서는 안 된다. 세계화에는 동아시아 연대, 남북한의 점진적 통합, 국내체제 혁신 등 세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 이는 셋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다시 셋인 관계에 있다.
이제 머리띠를 묶고 있는 운동들에게서, ‘간헐적’인 저항에서 더 나아가 삼중의 과제를 창조적으로 결합하는 ‘지속적’인 기운이 일어나기를 소망해본다.
(한겨레, 2006.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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