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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식] 동아시아의 문화혁명, 한류와 일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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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07-26 15:22 조회20,4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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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문화혁명, 한류와 일류

 

최원식 / 인하대 교수

 

 

얼마전 일본의 후지TV와 인터뷰를 했다. TV는 원체 소질이 없어 잘 나서지를 않는 편인데 그 취지가 흥미로워 수락했다. 요지는 이렇다. 왜 일본소설이 한국소설시장을 석권하고 있는가?

 

리포터는 야마다 아까네(山田あかね)라는 40대 후반의 일본 여성작가다. 그녀는 TV쪽에서 오래 일했다. 1995년에 등단해서 작년에 첫 장편 『베이비 샤워』를 출간했다. 그런데 자신의 처녀장편을 번역하겠다는 한국쪽의 연락을 받고 너무나 놀랐다는 것이다. 무라까미 하루끼(村上春樹) 같은 유명작가라면 모를까 무명에 가까운 일본작가의 작품을 과감하게 선택하는 한국의 사정에 큰 흥미를 느끼게 되어 그 방면을 조사해 보니 놀랍게도 현재 한국에서 일본소설이 대유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차, 이 문제를 다루어 볼 필요에 직접 이렇게 나섰다, 대충 이런 얘기다.

 

통역을 맡은 북코스모스의 김수경씨도 거든다. 하루끼붐도 요즘은 옛날일이란다. 요즘 한국소설시장에서 일본소설은 오히려 젊은 작가의 새 작품들이 더욱 인기라는 얘기다. 김수경씨가 아는 여성작가가 있는데 그녀도 친구들이 자기 소설은 읽지도 않고 최근 유행하는 일본소설 이야기만 해서 난감해 한단다.


한국 소설계는 일류(日流)가

 

나도 내심 저으기 놀랐다. 일본소설을 비롯해 외국소설들이 한국소설시장에서 강세라는 것을 듣고는 있었지만 이 지경에 이를 줄은 몰랐던 터다. 뒤에 어느 자리에서 만난 탁석산씨에 의하면 요즘 학생들이 아는 한국문인의 상한은 김승옥(金承鈺), 그 이후 한국문학에 대해서는 까막눈 신세란다. 김승옥도 알고 싶어 안다기보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덕분인데, 학생들이 즐겨 찾아 읽는 작품들은 거의 일본소설이라니, 한국의 대중문화가 일본에서 한류(韓流)로 자리를 잡고 있는 사이, 한국소설계에는 일류(日流)가 채를 잡고 있는 것이다.

 

아다시피 최근 출판계, 특히 문학분야는 전반적으로 독자의 격감을 실감하고 있다. 문학출판의 중심은 소설이다. 때로는 최영미(崔英美)처럼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된 경우가 없지 않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이고 문학시장을 주도해 온 것은 소설이다. 그런데 한국소설을 변함없이 지지해 온 독자들이 지금 급속히 분해중인 것이다. 그 동안 이 현상을 영상언어의 발달에서 원인을 찾아왔다. 영화 드라마 그리고 IT의 발달로 독서시장이 위축일로를 걸어왔던 게 사실이다. 이처럼 독서층이 얇아져 가는 추세 속에 그 남은 파이를 일본소설이 점유해 들어가고 있다니 한국소설은 현재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왜 한국의 젊은 독자들은 일본의 젊은 소설에 매료되고 있는가? 이는 명백히 한국소설에 대한 거절이다. 독자들은 한국소설의 무엇에 대해 반란하고 있는가?

 

이념과잉의 80년대 소설에 대한 반동으로 90년대 이후 한국의 작가들은 탈사회성으로 탈주하였다. 서사의 붕괴 속에 소설의 재미가 적어졌다. 일본소설의 강세를 90년대 이후 가속화한 탈사회적 한국소설에 대한 부정의 연장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일본소설은 한국보다 한술 더 뜬다는 점에서 이런 해석은 한계가 있다. 가라따니 고오진(柄谷行人)이 하루끼를 ‘학생운동세대가 흘러든 패션’이라고 비판한 데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일본소설은 일찍이 고도산업사회 안으로 포섭되었다. 그렇다면 최근 한국독자들의 일본소설 경도는 사회성이 강한 한국소설의 전통 전체에 대한 부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동아시아 공통의 문화를 재구축할 호기 아닐까

 

한국의 일류와 일본의 한류는 어쩌면 함께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의 한류가 전통적인 일본근대문화 전체에 대한 일본인의 거절이듯이 한국의 일류에도 한국의 현대문학 전체에 대한 강렬한 부정이 숨쉬고 있는 것일까? 중국의 한류까지 고려하면 현재 동아시아에는 일종의 문화혁명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욕구가, 차단되었던 이웃나라 문화 또는 문학에 경도로 분출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 진행되는 동아시아 문화혁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새로운 접근이 절실하다.

 

동아시아에서 드물게도 문화교차 현상이 착종되고 있는 경향을 제대로 탄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에서 각 국민문화를 쇄신하면서 동아시아 공통의 문화를 재구축할 호기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꿈도 꾸게 된다.

 

(다산포럼, 2005.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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