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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만] 대형 프로젝트 동력을 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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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12-07 14:20 조회28,6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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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대형 프로젝트 동력을 달자

 

서동만 / 상지대 교수, 정치학

 


10·4 선언은 총 2657자로 이루어진 긴 문서다. 기본원칙 내지 골격을 명기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부속합의서나 후속 실무회담에서 다루는 통상의 정상회담 합의문서와는 다른 체제다. 이 점에서 우선 2000년 6·15 공동선언 후속편의 각론이란 성격을 갖는다. 제1항에서 통일문제는 새롭게 거론하지 않고 6·15 공동선언을 재확인하며, 오히려 제2항에서 통일이 아니라 상호 공존 내지 불간섭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제5항과 6항에서 거론한 철도 및 고속도로의 공동이용을 위한 개보수사업, 조선협력, 백두산관광이 6·15 선언이 규정한 ‘민족경제 균형적 발전’에 해당하는 각론의 내용을 이룬다.

 

김대중 정부의 6·15 선언은 원칙만 담고 구체적인 내용은 구두로 합의하면서 후속 장관급회담에 미뤘다. 이에 따라 금강산특구, 개성특구, 철도, 도로연결 등 3대 사업은 실현되었다. 그러나 에너지 지원, 도로,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 지원은 이행되지 못했고 북쪽은 줄곧 불만을 표시해 왔다. 남쪽 노무현 정부의 사정도 절박했다. 임기 4개월만 남긴 시점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동시에 차기 정부에서 실천의 연속성을 확보하려면 실무회담 과제를 정상회담과 결합시켜야만 했을 것이다.

 

물론 10·4 선언에는 6·15 선언이 담지 못한 새로운 분야가 포함되어 있다. 남북 군사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한 것이 그것이다. 다만 포괄적인 원칙의 총론을 담기보다는 구체적 의제의 각론에 한정하는 방식을 취했다. 남북 군사문제는 서해 공동어로구역 및 평화수역 설정, 바로 북쪽이 근본문제로 강조해온 서해 해상경계선 획정문제이다. ‘서해 평화특별지대’는 양쪽의 안보이해가 첨예하게 맞서는 이 문제를 경제협력과 결합시켜 우회적으로 풀기 위한 방안으로 채택됐다. 다음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그 시발점으로서 종전선언을 위한 3자 내지 4자 정상회담에 국한시켰다. 핵문제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재확인하는 포괄적 방식이 아니라 6자 회담의 구체적 합의를 준수한다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이번 선언 내용은 실천될 경우 북-미 관계에 크게 좌우되어 왔던 남북관계가 독자적으로 발전해 갈 수 있는 동력이 될 대형 프로젝트들이다. 하지만 이미 거둔 열매가 아니라 앞으로 남북이 서로 협력해서 도달해야 할 목표라는 성격을 갖는다. 철도·도로 개보수의 사회간접시설(SOC) 분야, 조선협력이란 중공업 분야에는 기존의 경협과는 차원이 다른 막대한 규모의 자금이 조달되어야 하고, 추진이 본격화되려면 상세한 로드맵이 합의되어야 한다. 돈뿐 아니라 시간도 드는, 장기는 아니더라도 사업 착수에만 1~2년이 걸리는 중기적 성격을 갖는다. 서해 공동어로구역, 평화수역, 서해 평화특별지대 모두 협상을 통해 지도를 놓고 실제 선을 그어야 하는 작업이 요구되며, 남북 모두가 설정하고 있는 기존 영해 개념의 수정이 수반된다. 3자 내지 4자 정상회담은 초기 단계인 핵불능화 조처 실행 이후 미국이나 중국의 동의가 전제가 되는 외교적 과제다.

 

노무현 정부가 임기 말을 맞이한 시점에서 10·4 선언은 남쪽 내부에서는 합의 주체와 실행 주체가 바뀔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72년의 7·4 공동성명이나 6·15 공동선언처럼 합의가 원칙적·포괄적이면 당장의 실행 여부를 넘어서 시간을 두고 역사적 평가나 창조적인 재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처럼 풍부하고 구체적인 문서도 실행이 안 되면, 그에 반비례해서 허망해질 수 있다. 상투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국민과 함께하며 초당적 협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남북관계의 역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한겨레, 200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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