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정]우크라이나, 미국의 꽃놀이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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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04-04 15:21 조회5,70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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뉼런드와 통화하고 있던 제프리 파이엇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가 응답했다. “국제적 지위를 가진 누군가를 이쪽으로 내보내야 이것을 성사시킬 수 있어.” 뉼런드는 제이크 설리번 당시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과 이미 상의하고 있었다. “설리번이 바로 나한테 답장하면서 바이든이 필요할 거라고 했어…. 그리고 바이든은 ‘그럴’ 의지가 있어.”
2014년 2월이었다. 당시 우크라이나 상황은 폭발적이었다. 2013년 말 시작한 유로마이단 시위가 불꽃처럼 퍼지고 있었다. 불씨는 유럽연합과의 관계였다. 야누코비치 정부가 우크라이나-유럽연합 위원회 조약과 우크라이나-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의 서명을 무기한 연기한 것이 땅속에서 꿈틀대던 불씨를 땅 위로 끌어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서부 친서방 세력의 반대 시위에 불길이 붙었다. 경찰의 폭력적 진압이 불을 키웠다. 정부의 폭력에 분노한 시민들이 사방에서 들고일어났고 시위도 점차 폭력적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2014년 초에는 시위가 반정부의 성격을 띠며 정부청사와 의회 점령 운동으로 비화했다.
바로 이 시점이었다. 친러시아 성향의 야누코비치 정부의 실각이 가시화되고, 야당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던 바로 그 시점, 뉼런드와 파이엇이 전화통화를 했다. “이 시나리오”를 언급하며 ‘시위 이후’를 도모했다. 야당 지도자들과 소통하고 있음을 털어놓았다. 누구는 정부에 들어가면 안 되고, 누구는 “이 시나리오”에 잘 맞는지 논의했다. 이 구상을 추진하는 데 유럽연합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제쳐놓았다. 유엔의 협조는 확보했다. 동시에 자신들보다 “국제적 지위”가 높은 인물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공감했다. 그 인물은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었다. 그는 개입할 의지도 있었다.
이 전화 통화 이후에 미국 정부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2014년 2월18일 시위가 전국적 봉기로 폭발했다. 다음날 정부와 야권, 시위대가 휴전에 합의했으나,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우익 섹터와 전우크라이나연합 “자유”(스보보다) 계열 등의 시위대는 합의안을 거부했다. 이들은 총기를 휘두르며 무력으로 키이우 시내와 의회를 장악했다. 목숨에 위협을 받은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몸을 숨겼고, 여당은 의회에서 피신했다. 야권이 장악한 최고의회는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탄핵하고 5월 조기 대선을 결정했다.
가히 쿠데타라고도 할 만한 급격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친러시아 정권이 쫓겨나고 친서방 정권이 들어섰다. 하지만 이제는 친러 세력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크림 자치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했고 도네츠크와 루한스크가 그 뒤를 이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방위군을 새롭게 구성해 이들을 공격했다. 우크라이나 내전이 본격화했다.
미국 정부의 입장은 확실하고 견고했다.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에 20억달러 상당의 군사 지원을 제공했다. 신나치주의 아조우 군단이 방위군에 가담해도 개의치 않았고, 의회가 이들에 대한 지원을 금지했어도 군사원조는 끊기지 않았다. 파이엇 대사는 마이단 운동을 “민주화운동”, 이에 반대하는 세력을 “테러리스트”라고 지칭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애당초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에는 관심이 없었다.
2014년 우크라이나 ‘쿠데타’는 러시아를 궁지로 몰았다.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는 친서방 정권이 장악하고, 서방의 영향력이 러시아 바로 앞까지 확장될 것이다. 하지만 군사적으로 개입하면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푸틴이 묘수를 찾았다. 크림반도만 점령하고 더 이상 확전을 피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우크라이나 정부에 6억5천만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쿠데타를 획책했던 뉼런드는 바이든 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으로 영전했다. 그와 공조하고 있었던 설리번은 바이든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이 됐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친러 세력 공격도 격화되고 친서방 행보도 빨라졌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해결안을 내놓았지만 제대로 된 협상 한번 해보지 못했다. 또다시 궁지에 몰린 푸틴이 이번에는 전쟁을 선택했다. 이 전쟁은 미국의 꽃놀이패가 될까, 패착이 될까? 한반도에 주는 함의는 무엇인가?
서재정 |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겨레신문 2022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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