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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불안과 불확실성의 황무지에서 구원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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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08-01 12:43 조회4,9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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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조금씩 잊히고 있지만 한때 <해방일지>를 본 많은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 할 말이 있었다. 나의 경우 무엇보다 ‘추앙’이라는 용어 자체에 관심이 쏠렸다. 왜 사랑이 아니고, 뜬금없이 추앙일까. 드라마에 따르면 추앙은 “응원하는 거. 넌 뭐 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 거”다. 그렇게 일정 기간 멈추지 않고 추앙하면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 거란다. 

드라마가 끝나고 추앙, 해방, 환대, 세개의 낱말을 조합하면서 나는, 극한 세속의 시대에 이 드라마는 ‘구원’을 말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수수께끼를 품고 있는 드라마들이 종종 그렇듯이 <해방일지> 역시 끝까지 간 다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전체가 한 편의 되새김질, 자기 해석으로 드러난다.

이미 첫 회에 구원의 은총을 입은 남자가 있다. 여기에 연루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연루됨을 인지하지 못한다. 철저하게 우연에 지나지 않는, 그래서 ‘사건’이 되지 못하는 이 구원을 필연의 사건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드라마의 내용이다.

신(적인 것)의 현현에서 구원을 보았던 중세를 지나, 노동윤리에서 혹은 노동자 투쟁에서 구원을 찾던, 근대 이후의 세속화된 시대를 지났다. 그리고 지금은? 억압으로 든, 방향 제시로든 깃발이 되어주었던 대타자(들)마저 사라져 버린, 고삐 풀린 자유 속에서 우리는 나침반 없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구원은 너무나 먼, 아니 불가능한 전망이 되어 버렸다. 

사랑? 사랑이 자아를 구원해줄 것이라 믿는 게 가능한가? 젠더 갈등이 응어리진 관계 속에서 최선의 선택지는 ‘적절히 예의 바르게, 서로 상처 주지 말고’ 정도일 것이다. 노동윤리? 모든 관계가,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이 되어 버린 현실에서 노동의 윤리적 가치를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인지 부조화다. 신자유주의가 야비할 정도로 집요하게 세뇌한 '자기계발 교(敎)'도 이젠 약발이 다했다. 

드라마에서 사랑을 향한 갈망과 구원을 향한 갈망은 서로 미러링하면서 구원의 의미를 다진다. 지현아가 대표하는 전자의 속성은 ‘조금 더, 더더더...’이고, 염미정이 대표하는 후자의 속성은 ‘채워짐’의 감각과 관련된다. 불가능하거나(추앙) 포기했거나 (해방), 상품소비문화의 취향으로 전락한 (환대) 세 관념이 ‘구원을 향한 삶의 추구’ 로 전면에 등장한 맥락이다.

<해방일지>는 구원/추구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말자고 제안한다. 조건 없이 누군가를 추앙할 수 있으면, 하루에 더도 말고 5분만 설렐 수 있으면 당신은/나는 구원받는다. 성전이 사라진 시대에(이제 더 이상 쇼핑몰도 성전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단 한 사람이라도 머릿속에 성역으로 지켜낼 수 있으면, 날마다 숨쉬듯 그가 잘 되기를 기원할 수 있다면, 그러면 구원이 온다. 

이 교리를 펼치는 사람은 애인에게 돈을 떼이고, 약자를 찾아 열등감을 투사하는 찌질이 상사에게 매번 폭력적 언사의 폭격을 맞는 소심한 계약직 사원이다. 이 여자가 자기도 모르는 상태에서 한 남자를 구(원)한다. 알지 못한 채 구원의 은총을 입은 그 남자와 함께 날마다의 추앙을 통해 깨달음에 도달하고, 그로써 다른 누군가를 환대하는 구원자가 된다. 시대착오적인가? 

그러나 우리는 현재 두 갈래 길 앞에 서 있는 건 아닌지?. 점점 더 심해지는 원한의 늪에 빠져들 것인가, 아니면 시대착오적 환대와 구원 추구의 계열을 만들 것인가. 고삐 풀린 자유의 황무지에서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끝없이 사랑을 갈망한 지현아가 마지막에 ‘밧데리가 완전히 방전 될 때까지 일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그 무의미의 폐쇄회로에 갇히고 싶지 않다면, 당신과 나는 어떤 구원/추구의 서사를 써야 할까.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충청리뷰 2022년 7월 20일

https://www.ccreview.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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