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다시 본다, 고전:사진, 과거와 현재가 함께하는 공존의 신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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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1-11-15 13:48 조회6,75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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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미슐레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파면됐을 때 학생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고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우리는 당신 강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습니다. 단지 사라졌던 영혼이 우리 안으로 다시 돌아왔을 뿐입니다." 20세기의 가장 사랑받는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는 미슐레가 강의에서 했던 일을 글쓰기를 통해 하려고 했다. 그는 글을 읽고 쓰는 행위 속에서 교양을 쌓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말을 듣기를 원했다. 이런 소망 때문에 그의 글에서는 늘 이론이 아니라 그의 내밀한 목소리가 들린다.
'사진에 관한 노트'라는 부제가 붙은 '밝은 방'(1980)은 바르트의 마지막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사진의 두 요소,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functum)을 구분한다. 도로를 순찰하는 무장 군인들 사이로 수녀들이 지나가는 사진을 본다고 하자. 사진작가는 폭력적인 삶과 신성하고 평화로운 삶의 대비를 의도했을 테고 우리는 그 의도에 반응하며 전쟁이 끝나기를 기원한다. "도덕적·정치적 교양이라는 합리적 중계"를 거친 반응이다. 이처럼 우리를 건전한 시민으로서 반응하게 만드는 요소가 스투디움이다.
이와 달리 남들은 무심코 지나치는 세부 사항이 말을 걸며 나만 아는 기억 속으로 나를 데려가는 경우가 있다. 사진의 한 부분에서 "마치 화살처럼" 날아와 나를 꿰뚫고 내 마음을 물들이는 요소가 푼크툼이다. 이 하찮은 세부 사항 때문에 우리는 어떤 사진을 사랑하게 된다. "한 장의 사진을 사랑할 때, 또는 그 사진이 나를 어지럽힐 때, 나는 그것 때문에 머뭇거린다. 그 사진 앞에 머물러 있는 동안 내내, 나는 무엇을 하는가. 마치 그것이 보여주는 사물 혹은 사람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것을 바라보고 탐색한다."
이처럼 사진 속에서 우리 각자를 찌르는 개별적인 독특함에는 사진의 본질이 담겨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셔터의 '찰칵' 음은 사물들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소리다. 사진에 찍히는 순간은 '찰칵'과 동시에 과거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이 사라지고 변화한다는 사실에 대한 마음의 조바심이 기계음으로 번역된 것이다.
바르트는 돌아가신 엄마의 유년 사진을 본다. 다섯 살의 소녀가 온실 앞에 서 있다. 노년의 아픈 엄마를 혼자서 돌봤던 그에게 엄마와의 마지막 시간을 분명하게 환기시키는 것은 그녀의 말년 사진이 아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엄마는 점점 작아지고 연약해졌다. "엄마는 앓고 있는 동안 온실 사진에 나타난 본질적 아이와 결합되면서 나의 소녀가 되었다." 그가 사진을 바라보는 동안 엄마에게서 늙음은 휘발되고, 엄마는 바르트가 낳아서 키웠을지도 모를 아이처럼 작은 소녀의 모습으로 남는다. 그녀는 작고 사랑스러워서 죽는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 모습으로 사진 속에 있다. 하지만 사진에 찍힌 어린 소녀는 곧 사라질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소녀로 있지 않고 자라서 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부드러운 목소리와 매끄러운 피부를 지닌 사내아이를 낳게 된다.
'밝은 방'에는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사진이 여러 장 실려 있다. 사형을 앞둔 청년 정치범, 1931년에 어린 초등학생이었던 에르네스트, 애무를 하려는 듯 손가락을 살짝 펼치고 있는 젊은 남자의 누드. 사형은 곧 집행되고 유년은 빨리 지나가고 욕망도 금세 사라질 것이다. 이제 그들은 없다. 하지만 그들은 '확실히' 있었다. 모든 사진은 과거에 '있었던 것'을 내가 지금 보고 있다는, 과거와 현재가 함께 하는 "공존의 신비"를 본질로서 담고 있다.
하지만 푼크툼은 꼭 별난 순간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다만 거기 있었다는 사실 외에는, 별난 데라고는 전혀 없다." 우리는 특별할 것도 없는 대상들을 끊임없이 찍고 그것을 계속 바라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타임라인을 흐르는 그토록 많은 구름과 노을 사진들. 그것은 우리가 금세 사라지는 것들과 함께 있었다는 다정한 증언이자 그들이 가 버린 뒤에도 계속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는 조금은 쓸쓸한 약속이다.
사진 속의 연인, 친구, 강아지와 고양이들. 우리는 떠난 이들을 쉽게 보내지 못하고 그들이 분명 존재했다는 사실을 담아서 '밝은 방'에 자꾸 쌓아두려고 한다. 네가 거기 있었지. 나는 너를 보았지. 이제 안녕, 안녕... 언제나 사진은 작별 인사인 동시에 지금 곁에 없는 너와 만나는 재회의 인사다.
진은영 시인
한국일보 2021년 11월 4일
사진, 과거와 현재가 함께하는 공존의 신비에 대하여 (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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