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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에너지전환 속도조절로 독일이 치르는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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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04-04 15:39 조회5,6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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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에너지전환의 모범국이다. 20세기 말부터 태양광과 풍력, 바이오에너지 등으로 전기를 생산하기 시작하여 2020년에는 전력의 45%를 재생가능 에너지로 공급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원자력발전은 2022년 말 마지막 남은 원자로 3기를 폐쇄하는 것으로 완전히 종결한다. 그리고 전력생산의 25%를 차지하는 석탄발전은 2030년까지 모두 없앤다. 대신 2030년에는 전력의 80%를 재생가능 에너지로 생산할 계획이다. 탄소중립은 2019년에 제정된 기후보호법에 따라 2045년까지 완수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다.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그 독일이 ‘에너지 혼란’을 겪고 있다. 휘발유와 디젤 가격이 일년 새 두배로 뛰고 천연가스의 경우 도매가격이 5배 이상 상승하여 ‘에너지대란’이라고 부를 만한 사태가 발생했다. 언론에서는 연일 무엇이 문제이고 누가 잘못했는지 토론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자동차 출퇴근자들, 화물차 운전자들은 연료비를 견디기 어려워 아우성이고, 연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하는 기업들도 나오고 있다. 혼란의 근본 원인은 에너지의 과도한 러시아 의존 때문이다. 천연가스와 석탄의 절반 이상, 석유의 35%가량을 러시아에서 조달하는 상황인데, 전쟁으로 수입량이 줄었고 언제 파이프라인이 막힐지 모른다는 우려로 가격이 치솟고 혼란이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한편에서는 미국, 영국과 같이 러시아 가스와 석유 수입을 당장 전면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이유는 수입을 지속하면 러시아에 매달 수조원의 전쟁비용을 지원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은 독일인들이 난방을 줄이고 내복을 껴입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수입은 중단하지 않을 것이고, 송금은 막지 못한다고 말한다. 독일 사회가 수입 중단으로 겪게 될 더 큰 혼란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2008년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 2014년 크림반도 점령 후에도 러시아를 여전히 신뢰할 만한 파트너로 보고 러시아에 대한 수입 의존도를 높여간 메르켈 정부의 실책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후 에너지전환을 더 빠르게 추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속도조절을 유도하며 지연시켰던 것을 호되게 질책한다.

사실 메르켈 집권 시기 독일의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전환을 적당한 속도로 진행하는 가운데 전력 생산에서 원자력과 석탄 의존은 줄이고 가스 의존은 높이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가스는 에너지전환으로 넘어가는 교량 같은 것이었다. 이에 따라 전력 생산에서 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10% 미만이었던 것이 2020년에는 15% 이상으로 증가했다. 기후변화 억제를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석탄 산업의 눈치를 보며 가스의 비중을 더 빠르게 늘리지 않는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문제는 가스를 값싸게 확보하기 위해 러시아에 지나치게 의존했고, 러시아와의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이는 메르켈이 총리에서 물러날 때 푸틴이 전화를 하여 “풍성한 결과를 낳은 장기간의 협력”에 대해 감사드린다고 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야당 일각에서는 에너지대란 해결을 위해 원자력발전소 폐쇄를 늦추고 폐쇄한 원전 재가동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미 벨기에에서는 원자력발전 중단 시기를 10년 늦추었다는 것도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정작 폐쇄된 원전과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을 보유한 전력회사들은 그럴 의도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미 에너지전환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었고, 잠시 과거로 돌아가 원전 가동으로 작은 이득을 얻는 것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에서는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점령과 자포리자 원전 포격에서 드러났듯이 유사시에 발생할 수 있는 원자력발전의 위험과 사이버 공격시의 안전문제를 강조하며 원전 폐쇄 시점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대신 에너지전환에 박차를 가할 준비를 하고 있고, 러시아를 대체할 국가를 찾아 중동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자유당 출신 재무부 장관은 “재생가능 에너지가 에너지 의존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자유의 에너지”라고 말하며 에너지전환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다.

독일의 현재 상황은 정권교체로 원자력 확대와 에너지전환 후퇴로 돌아가려 하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자력발전을 고집하고 에너지전환을 소홀히 할 때 유사시에 어떤 어려움에 처할 수 있는지. 특히 안보 불안이 상존하는 한반도이기에 더욱.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이투뉴스 2022년 3월 28일 

http://www.e2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40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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