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연] ‘평등법’이라는 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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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1-09-15 14:44 조회6,90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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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지난 8월 31일, 권인숙(더불이민주당 비례) 국회의원은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안(이하 평등법)’을 대표발의했다.
권 의원이 낸 보도자료에 의하면 ‘평등법’은 2006년 처음 국가인권위원회가 법 제정을 권고한 이래 현재까지 8차례나 법안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폐기와 철회를 반복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발의조차 못 됐다.
흔히 법은 보수적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법안이 발의돼 제정되기까지는 많은 절차가 필요하고, 사회적인 합의가 동반돼야 한다. 이미 제정돼 적용되는 법을 개정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러나 때때로 이러한 통념은 법 제정을 방해하는 억지가 되기도 한다. ‘사회적인 합의’를 호도하거나 왜곡하는 일이 왕왕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난 14년 동안 ‘평등법’의 발목을 잡은 논리 역시 그러했다.
다시 돌아가 보자. 법은 보수적이고, 일면 보수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의 보수란 그 사회의 보편타당한 가치를 지켜내는 일을 의미한다. 그것은 결코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법은 한 사회의 변화를 가장 기민하게 담아내는 척도가 돼야 한다. 그래야만 그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본다면 법은 어떤 면에서는 가장 진보적이어야 하고, 진보적일 수밖에 없다. 변화하는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축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법은 약자의 편에서 사회적 모순과 폭력을 막아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평등법’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헌법의 가치가 사회 모든 영역에서 실질적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사회적 약자를 향해 가해지는 혐오와 차별을 막아내는 최소한의 방어벽을 구축하는 일이다. 권 의원의 말대로 “우리 사회의 최저기준”을 가늠하게 해주는, 즉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법안 발의에서 보다 주목되는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평등법에 따른 용어의 수정이다. 바로 ‘괴롭힘’에 대한 용어 정의에서 ‘수치심’을 ‘불쾌감’으로 바꿨다는 사실이다. 수치심이란 스스로를 부끄럽다고 느끼는 마음이다.
그것은 어떤 행동이나 상황으로부터 느끼는 부끄러움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다. 이 경우 가해의 인과는 불분명해진다. 반면 불쾌감이란 상대의 행동이나 상황으로 인해 마음에 거슬리고 언짢은 느낌을 받는 것을 말한다. 가해의 인과가 분명해지는 용어인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이러한 용어의 변화가 사소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 법률적인 용어는 그 자체로 피해와 가해를 규정한다.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사회는 이 ‘수치심’이라는 용어를 피해자의 감정을 규정하는 것으로 사용했다. 때때로 그것은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피해를 부끄러워하고 숨기기를 강요하는 2차 가해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 용어의 변화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피해자를 향한 또 다른 폭력을 막고, 더 나아가 가해자의 행위를 직접적으로 꾸짖어 그 죄를 보다 명확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평등법’이 그 이름에 걸맞은 내용과 형식을 보다 단단히 갖췄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번에야말로 줄탁동시(啐啄同時)로 소중한 결실이 맺어지기를 바란다.
류수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인천투데이 2021년 9월 10일
출처 : 인천투데이(http://www.incheon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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