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다시 본다, 고전 '자기 자신'으로 존재했기에 사후에야 세상과 만난 디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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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1-10-18 17:24 조회7,23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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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여성시인 에밀리 디킨슨에게는 특이한 수식어가 많이 따라다닌다. 뉴잉글랜드의 수녀, 미친 노처녀, 법률가의 딸… 그러나 소설가 백수린은 이 시인을 "사회적 통념과 무관하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담담하면서도 적확하게 표현했다('에밀리 디킨슨, 시인의 정원' 추천사).
에밀리 디킨슨은 19세기 미국의 청교도문화가 지배적이었던 뉴잉글랜드에서 일생을 보냈다. 53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35년 동안 집 밖으로 외출을 하지 않고 검소하게 살았다. 이 때문에 그녀는 폐쇄 수도원의 수녀에 비유되곤 한다. 또한 시를 1,800편 가까이 썼지만 생전에 시집을 한 권도 내지 않았고 발표한 시도 일곱 편뿐이었다. 여동생이 죽은 언니의 서랍 속에 있던 원고들을 가져다 출간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위대한 여성시인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애머스트 대학을 설립한 변호사였다. 아버지도 유능한 변호사였고 지역의 유지여서 시인의 집은 주택과 헛간과 넓은 개간지를 포함해 1만여㎡나 되는 대지 위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가 외출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방에 갇혀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채 지냈다고 보는 것은 오해다. 그녀는 교육에 관심이 큰 법률가 집안의 딸이었으니 가난한 농부의 딸보다는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랐을 것이다. 그렇지만 보들레르나 릴케를 '공무원의 아들'이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유독 디킨슨에게 '법률가의 딸'이라는 별칭을 붙이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사람을 멀리하는 외로운 사람, 괴짜라는 일부 설명과 달리 에밀리 디킨슨의 시들은 다정하고 심오하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찾아다니는 이의 모습이 "음악을 다 연주할 때까지/건반을 더듬은 연주가"('그이는 그대의 영혼을 찾아다닌다')를 닮았다고 쓴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그녀의 건반을 하나하나 눌러보고 그 소리를 들으며 그/그녀를 알게 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디킨슨은 친구들에게 1,000통이 넘는 편지를 보냈고 특히 여자친구들과 깊은 우정을 나눴다.
19세기 미국 여성들 사이의 우정은 관능적이라고 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결혼한 뒤에도 관계가 돈독해서 친한 여자친구는 남편보다 그들의 인생에서 중요한 인물인 경우가 많았다.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에 따르면 디킨슨은 소중한 삶의 경험을 나눌 사람들을 신중하게 선택했으며 자기 시간을 잘 배분할 줄 알았다('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난 영혼을 알고 있지―그 광대한 나라에서/하나를 선택하라/그리곤―관심의 밸브를 잠가버려라―"('영혼이란 제 있을 곳을 선택하는 법')라고 쓸 정도로.
시인이 선택한 하나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관심의 밸브를 잠가버리라고 썼지만 사실 그 선택을 통해서 더 중요한 것들로 향하는 관심의 밸브를 열어놓은 셈이다. 그녀는 반려견 카를로와 산책하면서 발견한 버섯과 꽃들과 민트색의 알을 낳는 로빈새에 관심을 기울였다(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는 뭐든 카를로와 애기해"라고 썼다). 그리곤 보고 느낀 것들을 시로 써서 친구들에게 보냈고 받는 이를 위해 시들을 조금씩 바꾸기도 했다. 시가 다른 사람들과 삶을 나누는 방식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출판의 형식을 빌려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디킨슨의 시는 대시(dash·―)로 가득하다. 시어들이 구슬처럼 대시에 꿰어져 있다. 한 단어는 다른 단어가 등장하기 전까지 대시 안에서 충분히 쉬고 있는 것 같다. 시인은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속도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의 속도로 단어에 머물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문장부호의 사용법은 당시의 인쇄 문화와 관습에는 맞지 않았다. 어떤 연구자들은 디킨슨이 시집을 출판하지 않은 것은 표준 문법에 맞춰 강제적으로 수정된 인쇄물보다는 자필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방식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사후출판은 디킨슨에게 가장 어울리는 출판 방식일지도 모른다. 시인이 다른 이들에게 직접 시를 읽어주고 시를 동봉한 편지를 보내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뒤에야 인쇄기로 찍어낸 활자들이 시인의 목소리와 손글씨를 대신하는 것이다. 어쩌면 시들이 출판된 후에만 시를 쓴 사람이 비로소 시인이 된다는 우리의 관념은 전도된 것이 아닐까? 출판인쇄란 그저 시인이 없는 곳에서 시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보조적 수단에 불과할 뿐이에요, 라고 에밀리가 다정하게 말하는 것 같다.
진은영 시인
한국일보 2021년 10월 07일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00509480002891?di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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