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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 바이러스는 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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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05-14 17:50 조회12,2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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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는 악이 아니다. 오히려 바이러스는 생명의 그물망에 함께 존재하는 친구이다. 다만 만나야 할 인연과 만나면 안 되는 인연이 있듯이 공존이 불가능한 바이러스를 만나 우리가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공존이 가능한 존재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개체의 삶은 풍요로울 것이다. 공존 가능한 다른 개체가 많을수록 존재의 역량은 증대한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논리이지 현실은 아니다. 물론 현실에서도 공존 가능한 존재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지난해 말에 새로 등장한 바이러스 친구에게 얼굴이 있다면 그 얼굴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죄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까 상대방의 눈동자를 읽으려는 본능이 꿈틀거리듯이, 좀처럼 떠나지 않는 이 바이러스 친구에게 우리의 사는 꼴이 무엇인지 묻는 것도 가능하리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이 한번은 의문의 법정에 서야 했지만, 균일한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아무도 그런 일을 행하려 하지 않았거나 누가 그러기라도 하면 지금껏 비웃기 일쑤였다.

 

이 바이러스 친구 덕에 아무리 사나운 논리와 언어와 스트라이크와 봉기로 공격해도 철옹성 같았던 자본주의가 요동하기 시작했다는 말도 들려온다. 이 익숙한 체제가 붕괴된다면 그 잔해로 엄청난 사람들이 위험하게 될 것이다. 물론 지금 붕괴를 예측하는 것도 섣부른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이나 ‘헬리콥터 머니’라는 말이 급부상하듯이 그동안 역시 비웃음의 대상이었던 이야기들이 눈앞에 그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격동하는 현실 속에서 관념으로만 존재했던 것들이 그대로 구현되기는 불가능하겠지만, 조금이나마 그것들이 현실 쪽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 삶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무언가를 직접 몸으로 느껴 보면 관념도 저절로 변이를 일으킨다. 지금 우리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친구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불필요한 생산과 놀이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듯이 말이다. 김수영은 일찍이 ‘세계일주’라는 시에서 세계일주를 비난한 적이 있다. 그는 아예 “세계일주를 떠났다는 것이 잘못된 길이다”라고 단언했다. 세계일주라는 그 많은 낭비, 그 깊은 파괴, 그 경박한 즐거움…. 어쩌면 세계여행을 통해 만들어진 우리의 자아 자체가 바이러스의 일종일 수 있다. 바이러스 친구 덕에 불필요한 여행과 활동이 멈춰지니 사라졌던 생명들이 돌아오기까지 하는 것은, 그것의 생생한 방증일 것이다.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바이러스 친구들이 우리를 강제로나마 멈추게 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공존 불가능한 바이러스 친구를 통해 애초에 공존해야 했던 존재들이 돌아올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다. 나는 이번 기회에 우리와 함께 공존해야 하지만 우리가 내쫓은 존재들의 목록을 잠시 생각해 봤다. 물론 그것들은 내가 예전에 만났던 존재들의 소환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자본주의는 다양성을 보장해 주고 실제 우리는 다양성이 만개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자본이 강제한 동일성을 살고 있을 뿐이다. 다양한 것은 상품의 외형이지 상품이 강제하는 것은 언제나 단 한 가지이다. “소비하라, 그러면 존재할 것이다!” 과잉 생산된 상품은 언제나 그것을 소비시킬 시장을 찾는다. 아니, 찾는 게 아니라 시장을 개발한다. 그리고 이 시장의 개발은 자유무역이란 이름으로 명명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자유무역은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의 민중을 괴롭히는 것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통의 토대, 즉 이 세계를 파괴하는 것에 더 가깝다.

 

어쨌든 성격이 만만치 않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친구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계가 꽤나 명확해졌다. 적의 얼굴에 비치는 모습이 가장 정직한 자기 모습이다. 맑은 거울의 뒷면은 치명적인 독이 발라져 있다. 이렇게 보면 지금 우리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철없이 뛰어다니는 바이러스는 악이 아니라 우리의 친구일 수도 있다. 다만 지금 당장은 서로가 괴로운 존재일 뿐이다. 이 괴로움 속에서 우리의 현재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그 괴로움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더 고약한 바이러스 친구들이 속속 문을 두드릴 것이다. 

 

 

황규관. 시인

 

 

서울신문. 2020년 5월14일

원문보기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51403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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