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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도서정가제 논란에 대한 팩트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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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09-03 10:59 조회9,9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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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도서정가제가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3년마다 재검토를 거치는 도서정가제 관련 법규에 따라 그동안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한 민관협의체에서 십수차례에 걸쳐 논의한 끝에 합의안을 마련했지만, 이를 외면하고 전면적인 재검토를 하겠다는 문체부의 방침이 반발을 낳고 있다. 이에 맞서 지난 8월10일 문체부는 “폭넓은 의견수렴을 거쳐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개선안을 마련”하려는 뜻이라는 해명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요즘 우리 사회가 사안에 따라 둘로 갈려 극단적 대립을 마다하지 않는 일은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사태 전반을 온당하게 파악하는 어려운 작업 대신에 여론을 주무르기 위해 자신의 주장에 유리한 사실만을 부각시키거나 왜곡과 과장도 빈번하게 끼어든다. 안타깝게도 도서정가제 찬반 논의도 이런 폐해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니 도서정가제 폐지론의 중요한 주장을 검증해보자. 그렇지 않으면 문체부가 민관협의체의 논의를 국민에게 알려 더 합리적인 결론을 내겠다는 방침도 엉뚱한 쪽으로 흐를 수 있다. 지난해 도서정가제 폐지를 위한 청와대 국민청원은 20만명을 채워 주무 장관의 (원론적인) 답변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청원의 주요 주장은 2014년 개정 도서정가제를 시행한 후 지역서점 수 감소, 출판사 매출 위축, 도서 초판 발행부수 감소, 평균 책값의 상승, 독서인구의 감소 등으로 출판독서시장이 망가졌다는 것이다.

 

첫째, 개정 도서정가제가 작은 지역서점들을 망하게 했을까? 사실과 다르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전국 순수서점의 수는 1996년 5378개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여년 동안 지속적으로 줄었지만, 개정 도서정가제 이후 감소폭이 완화되었다. 개정 도서정가제 이전의 서점 감소율은 2009년 10.6%, 2013년 7.2%였지만, 시행 이후 2015년 4.1%, 2017년 1.5%로 감소세가 완화되었다. 이는 강화된 도서정가제가 지역서점의 생존 여건을 조금이나마 개선했다는 것을 뜻한다. 무엇보다도 ‘독립서점’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서점이 등장한 것은 확실히 도서정가제 덕분이다. 2015년 101개에 불과했던 독립서점은 2020년 650개로 늘어났다. 도서정가제가 특색 있는 작은 서점들의 경쟁력 기반이 되어준 것이다.

 

둘째, 도서정가제가 출판산업의 매출에 악영향을 끼쳤을까? 사실이 아니다. 출판사는 2013년 4만4148개에서 2018년 6만1084개로 증가했고, 신간발행종수도 2013년 6만1548종에서 2017년 8만1890종으로 늘었다. 독립서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도서정가제는 1인 출판사, 소규모 출판사들이 출판업에 뛰어들 제도적 기반이 된 것이다. 초판의 평균발행부수가 2014년 1979부에서 2017년 1401부로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초판 발행부수 감소는 출판이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줄 뿐 도서정가제의 폐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더구나 출판산업 총매출은 디지털 환경 변화 속에서도 소폭 감소에 그치며 선전하고 있다.

 

셋째, 도서정가제 탓에 책값이 비싸졌을까? 그렇다고 보는 일부 소비자의 호소가 있지만, 사실과 거리가 멀다.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조사에 따르면, 2015년을 100으로 할 때 2018년 전체 소비자물가지수가 104.45인 데 반해 서적류는 103.13에 머물렀다. 교보문고의 관련 조사에서도 책값은 도서정가제 이후 상대적으로 다소 떨어졌다.

넷째, 도서정가제 때문에 독서인구가 줄었을까? 그렇게 볼 근거는 부족하다. 독자개발 조사보고서인 <읽는 사람, 읽지 않는 사람>(책의해 조직위원회·문화체육관광부, 2018)에 따르면, 가장 큰 독서 장애 요인은 ‘시간이 없어서’(19.4%)이며, ‘책을 사는 비용이 부담스러워서’는 1.4%에 불과하다. 문체부의 <201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2020)도 대동소이한 내용을 담고 있어 독서인구 감소에 가격 요인이 크지 않음을 입증하고 있다.

 

도서정가제 폐지 국민청원은 “지식 전달의 매체로서 책은 언제나 구할 수 있는 곳에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책은 ‘저렴한’ 가격이 아닌, ‘적정한’ 가격에 공급되어야 한다. 책이 적정한 가격에 팔려야 저자-출판사-서점-도서관-독자로 이어지는 책 생태계의 선순환과 지속 가능한 발전이 이루어진다. 생산가격 이하로 후려치는 출혈경쟁의 부작용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며, 위의 간단한 팩트 체크로도 도서정가제의 긍정적 효과가 드러난다. 이 엄연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에야 비로소 전자책의 도서정가제 등 기술발전과 사회변화에 따른 새 쟁점들에 대해 합당하고 열린 논의가 가능하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경향신문 2020년 8월14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8140300015&code=990100#csidxd4e656e0cbe36d88ad5b52e7d6c1b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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