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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직] 검사의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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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4-09-04 09:41 조회7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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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분했다

“제가 바라는 건 돈이 아니라 사과입니다”


판사가 검사를 보자 벌떡 일어선 검사

옷매무새를 가다듬더니 허리를 가볍게 굽히며 또렷하게 말했다


“검찰을 대표해서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종결됐다


재판은 사람이 살면서 필요에 따라 만든 제도이지만, 그 본질은 파고들수록 모호하다. 게임과 마찬가지라면 승패만 가리면 될 텐데, 전쟁처럼 싸우려 든다. 시비를 가려 정의를 실현하는 게 목표라면 사정은 더 곤란해진다. 소장에 나타나는 것은 분쟁의 단면이고, 그 이면에는 사건의 발단부터 행위와 의도가 얽히고설켜 있다. 폰 노이만의 한마디가 좌절 또는 위안의 근거가 된다. “수학이 얼마나 단순한지 모르는 것은, 인생이 얼마나 복잡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기면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지면 무조건 불복한다. 법원에 대한 신뢰는 교과서용 문구에 불과하고, 패자는 전세를 뒤집기 위해 최후의 수단을 찾아 나선다. 불신하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재판에 의존하려는 태도 역시 재판제도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재판권은 하늘이 부여한 것이 아니다. 최초의 판단 권한은 분쟁 당사자들이 갖고 있다. 사실관계 자체도 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스스로 권한을 행사하여 사태를 해결하면 될 텐데, 굳이 법원으로 달려가 감정까지 불사르고 불만의 가슴만 부여안고 나온다. 분쟁 당사자들 스스로 재판권을 행사하는 행위의 미덕을 제도화한 것이 화해와 조정이다. 화해나 조정은 양 당사자가 합의에 이르러야 가능한데, 그보다 더 손쉬운 방법은 한쪽이 먼저 포기하거나 그와 다름없는 양보를 하는 것이다. 한쪽의 양보는 다른 쪽의 양보를 유도한다.


A 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고소 사건에 휘말려 검찰청에 조사받으러 갔다가 자신의 전과기록을 확인하게 됐다. 가끔 세상을 난파선처럼 여기고 비틀거리며 산 탓에 폭행을 비롯한 몇 가지 행적을 달고 다니지만, 범죄경력조회서의 목록에는 자기가 아는 것보다 하나가 더 많아 보였다. 따져들어 보니 타인의 전과가 잘못 기재된 것이었다. 강력하게 항의하고 절차를 밟아 정정을 하긴 했으나, 화가 풀리지 않았다. 사과를 요구하다가 끝내 위자료를 달라는 소송에 이른 것이다.


청구취지는 몇백만 원의 소액사건이었지만, 판사는 과감하게 조정에 넘겼다. 조정실에 나타난 피고 소송대리인은 변론기일에 출석했던 국가소송수행자가 아니라 검사였다. 먼저 원고에게 10분 동안 시간을 주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해보라고 했다. A 씨는 여전히 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기된 표정으로 주장을 토해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과라고 했다. 판사는 검사를 돌아보았다. 순간 검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상의 단추를 잠그고 매무새를 가다듬더니, 허리를 가볍게 굽히면서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한민국 검찰을 대표해서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종결되어 버렸다. A 씨는 어딘가 맺혔던 응어리가 주먹으로 움켜쥔 물처럼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안도의 웃음을 애써 감추며 소를 취하하겠다고 말했다. 젊은 검사의 순간의 결정이 미리 예정되었던 방안이나 사전 승인된 결론의 하나였는지 알 수 없었다. 공권력의 작용과 벽에 부딪혀 어쩔 줄 몰라 하는 평범한 시민을 위로할 수 있다면, 검사의 형식적 위신이나 국가의 체면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오히려 자연인으로서가 아니라 검사로서 자신을 낮추어 검찰과 국가의 품격을 세운 결과가 됐다.


검사가 집무실로 돌아가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그 과정에 대해서 상세히 언급했는지 역시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날의 검사는 검찰총장이나 법무부장관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국가소송의 대표였다.


차병직 변호사

법률신문 2024년 8월 28일 

https://www.lawtimes.co.kr/opinion/200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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