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근] 노벨상처럼 빛나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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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4-11-06 16:23 조회25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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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작가의 책을 구하려는 인파로 대형서점에 오픈런 사태가 벌어지고, 파주출판단지의 인쇄공장들은 작가의 책을 인쇄하느라 며칠째 밤샘 작업 중이라고 한다. 세계 언론도 수상 소식을 전하며 작가의 문학세계와 한국의 현대사를 조명하고 있다.
감격스러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물론 이 열기가 얼마나 갈까 냉소도 없지 않고, 선배 세대 작가들과의 비교로 껄끄러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생각은 다양한 것이기에 불가피한 일이다. 소란의 와중에 작가는 전쟁의 고통 앞에 잔치를 벌일 수 없다며 기자회견조차 사양했다. 광주와 4·3 등 한국 현대사의 깊은 상처를 다뤄온 작가의 문학세계와 삶의 태도가 일치하는 모습이다. 침묵의 울림이 더욱 크고 깊다.
작가의 대표작인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을, 『작별하지 않는다』는 1947년 이래의 제주 4·3 학살을 다룬다. 당대의 비극과 이후의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작품을 위한 방대한 자료 조사가 필수였다.
『소년이 온다』의 에필로그에서 작가가 밝히듯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읽는다는 것이 처음의 원칙이었다.”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이후 전남대 5.18연구소)에서 펴낸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 등 여러 자료집을 읽었고, 제주4.3연구소에서 펴낸 『이제사 말햄수다』 시리즈 3권, 『4.3과 여성』 등 많은 구술 자료집을 탐독했다고 한다.
역사학자 박찬승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의 한켠에는 광주와 제주의 이름없는 연구자들이 진행한 구술 채록 작업이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1990년대 이래 수많은 구술 채록 작업이 학계와 지역에서 진행되어왔다. 수천, 수만 명의 낮은 목소리를 활자로 옮기는 길고 지루한 작업이다. 이 빛나지 않는 작업들의 축적 없이 저 찬란한 노벨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문득 예전 기억이 난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몇 년간 한국의 고문헌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대학 기관에 적을 두었다. 나같은 20세기 연구자는 극소수였고 본령은 전통시대 연구였다. 그때 역사의 기초연구가 어떤 것인지 어깨 너머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우리 연구실 옆방은 동궁일기 번역팀이었다. 한 질 완간이 될 때마다 증정본이 왔다. 『소현세자일기』 수십 권을 받아놓고서 궁금증에 들춰보곤 했다. 한 글자 해석 문제로 며칠을 끙끙 앓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건너편 방은 의궤 해제팀이었다. 방대한 의궤를 일일이 스캔하고 번역과 주석을 다는 고된 작업을 여러 해째 진행하고 있었다. 고해상도 스캐너가 있어서 가끔 신세도 졌다.
정규직 임용을 위한 자기 연구에 몰두하기엔 번역과 해제의 업무량이 너무 방대해 보였다. 해당 자료의 연구로 주제를 돌리면 되겠다 싶지만, 주제가 한정되면 취업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그래도 매일 밤늦게까지 연구실 불이 밝았다.
가끔 전통시대 자료를 읽거나 인용하게 될 때면 그 맑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이런 이들이 말없이 쌓아 올린 학문의 토대 위에서 우리 인문학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인문사회계열 박사학위 취득자 중 대학에 정규직 교수로 자리잡는 이는 열 명에 한 명꼴이라고 한다. 프로젝트 기반의 비정규직 자리도 경쟁이 심하고, 강사 자리조차 쉽지 않다. 한국연구재단 등의 지원은 대개 대학 기반이라 대학 신분제의 모순이 고스란히 투영된다. 대학은 간접비 받아 싼값에 사람들을 부리고, 정규직 교수들은 업적도 쌓고 사람도 거느린다. 기한이 끝난 연구자는 버려진다.
젊은 세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국가박사제라는 대안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국가의 직접 고용 형태로 안정적 연구를 보장하자는 안이라고 한다. 대학에 임용되지 않아도 생계가 안정되면, 일반 연구는 물론 구술 채록과 번역 등 빛나지 않는 토대 연구들이 더욱 용이해질 것이다.
기초연구는 빛나지 않는다. 나도 고전 사회학 저작 한 권을 몇 달째 번역 중인데 훌륭한 책이라 번역에 나섰지만 역시 지루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돈도 업적도 안 되는 일이라 학계에 있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다. 우리 학문의 토대가 부실한 이유다.
국가박사제가 최선의 안인지는 모르겠지만, 정규직 교수들이라면 책임감을 느끼고 함께 고민하고 힘을 모으면 좋겠다. 노벨상처럼 빛나지 않아도 이 연구자들 없이 학문의 미래는 없다.
조형근 사회학자
교수신문 2024년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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