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정]‘밥 한번 먹자’ 하지 않는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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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1-07-05 15:52 조회7,81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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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군이 시민에게 총구를 겨누는 야만적 폭력의 시대를 이미 극복했다. 세계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폭력으로 지배하는 식민주의 시대를 이미 넘어섰다. 그 당시의 폭력에 대해 국가가 사죄하고 배상하는 세상이 됐다. 지금은 새로운 양심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인 북한을 미국 핵무기가 겨누고 있어도 괜찮은 것인가?’ ‘행여 살이 찔까 노심초사하면서도 휴전선 이북으로는 쌀 한 톨 보내지 않을 것인가?’
“언제 식사 한번 같이하십시다.”
한반도는 딱 거기에 머물러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기에 북-미 대화와 남북대화의 전기를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도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아무 조건 없이 북과 대화를 하자고 한다. 북도 물론 ‘대화에도 준비’되어 있다고 되풀이한다. 하지만 대화는커녕 그 약속도 잡지 못하고 있다. 일상에서 많이 보는 모습이다. 언제 밥이나 같이하자고 하면서도 아무도 캘린더를 꺼내 들지는 않는다.
아무도 당장 판을 뒤집어엎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시간 들이고 돈 들여서 같이 밥 먹을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 관리들은 이미 선언했다. ‘북핵 문제는 이전 어느 정부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이다.’ 뒤집어서 얘기하면 자기들이라고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도는 없다는 것이다. 북이 핵을 포기할 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는 북이 원하는 관계 정상화와 평화체제를 줄 의사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해서 상황 관리가 최선이다. 이미 미국 핵무기로 북을 억제하고 있고 경제 제재로 옥죄고 있다. ‘밥 한번 먹자’고 하며 이미지 관리를 하면 된다. ‘우리는 대화를 원하는데 북이 응하지 않네… 역시 북한이 문제야!’
문재인 정부는 무언가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내고 싶어 한다. 대통령으로서의 ‘업적’도 걸려 있고, 내년 대선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한-미 워킹그룹을 종료해서라도 한국 정부의 손발을 풀고 싶어 한다. 그렇다 해도 한-미 동맹에 물 샐 틈이라도 생기거나, 행여 그렇게 보일 여지라도 있을까 몸조심한다. 그래서 내년 대선은 한국 정부의 손발을 묶는 밧줄이 되기도 한다. 남북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했음에도 미국이 한반도 북쪽에 핵무기를 겨냥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고, 평화체제 구축을 약속하고도 ‘강한 국방’을 더 강력하게 추진한다. 한국 정부도 ‘밥 한번 먹자’며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게 최선이다.
북은 현재 비핵화에도 관심이 없고 평화체제는 더더욱 관심 밖이다. 남북 관계는 이미 2018년 정상회담 이전으로 시계를 돌려놓았고 ‘적대 관계’라고 규정해버렸다. 핵무기를 손에 쥐었으니 미국과는 이미 ‘공포의 균형’을 이루었다고 한다. 뒤집어서 얘기하면 핵무기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과의 대결에서 핵심은 경제 제재를 돌파하는 것이라며 경제 자립에 올인하고 있다. 어차피 코로나19로 세계경제도 요동 치고 있는 판국이니 이참에 아예 국경을 틀어막고 자립도를 최대한 끌어올리자고 한다. 정해놓은 지표들을 달성하면 전략적 목표들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금은 자력갱생이다. 북도 ‘밥상이 다 차려지면 연락하라’고 답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고 경제학자들은 설파한다. ‘공수표 점심 약속’도 공짜가 아니다. 시나브로 한-미 동맹은 지역동맹으로 확대되고 있다. 유엔사령부의 모자를 쓰고 영국 해군과 프랑스 해군이 일본에 기항하고 중국 인근에서 군사작전을 펼치기도 한다. 북의 핵무기와 미사일 능력은 하루하루 증가하고 있다. 한반도가, 동북아시아가 군비경쟁에 빠져들고 있다.
해서 며칠 전 대법원 판결에 눈길이 간다.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시우’가 거기에 있었다. 그는 공수표를 날리지 않았다. 비폭력주의와 반전주의 신념에 따라 행동했다. 병역거부에 대한 법의 처벌과 사회적 차별을 회피하지 않고 양심을 따랐다.
그와 같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법정에서 자신의 양심을 입증해야 한다. ‘양심 감별사’를 자처한 검사들의 질문에 양심적으로 답해야 한다. ‘80년 광주로 돌아간다면 총을 잡겠는가?’ ‘일제 침략에 저항하기 위해 무력을 행사할 것인가?’ ‘가족의 목숨을 위협한다면, 당신은 가만히 있겠는가?’(‘‘양심 감별사’ 검찰이 퍼붓는 질문’, 임재성 칼럼) 이 질문들이야말로 폭력적이고 몰역사적이다.
대한민국은 군이 시민에게 총구를 겨누는 야만적 폭력의 시대를 이미 극복했다. 세계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폭력으로 지배하는 식민주의 시대를 이미 오래전에 넘어섰다. 그 당시의 폭력에 대해 국가가 사죄하고 배상하는 세상이 됐다. 지금은 새로운 양심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인 북한을 미국 핵무기가 겨누고 있어도 괜찮은 것인가?’ ‘지금 당신은 한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있으며 다른 손으로는 전쟁을 계속하고 있을 것인가?’ ‘행여 살이 찔까 노심초사하면서도 휴전선 이북으로는 쌀 한 톨 보내지 않을 것인가?’
‘밥 한번 먹자’고 해서는 평화가 오지 않는다. 양심이 평화를 일굴 것이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겨레 2021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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