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옥] 45년 변함없는 성차별, 45살 차이 우리가 통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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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1-08-18 11:51 조회7,62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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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미디어 <슬랩> 10대·60대 페미니스트의 만남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의 저자 김영옥(63)씨와 청소년페미니스트네트워크 위티 활동가 진가은(18)씨가 젠더 미디어 <슬랩> 촬영을 하고 있다.
“여학생이 짧은 숏컷을 했다는 이유로 선생님들이 벌점을 줬어요. 혐오감을 일으키는 머리 모양이라면서요.”(10대 페미니스트)
“여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온몸이 후끈해진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죠. 여대 다니는 내내 남자 교수님들로부터 이런 얘길 들었어요.”(60대 페미니스트)
10대 페미니스트와 60대 페미니스트가 기억하는 생애 첫 성차별이다. 한국 사회에서 10대·60대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두 사람의 삶은 다르고, 또 같았다.
지난 4일 청소년페미니스트네트워크 위티 활동가 진가은(18)씨와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의 저자 김영옥(63)씨가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왜 지금 한국 사회에 페미니즘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위해서다.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사회 변화에 대한 반발성 공격)가 심각한 상황이다. 백래시의 방식은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를 낙인 찍어 공격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페미니즘이 남성을 비하·혐오하는 불온한 사상이라는 주장을 하며 온라인 집단 공격을 일삼고 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별점 테러’, ‘GS25 집게손 사건’, ‘안산 선수를 향한 온라인 괴롭힘’ 등이 그 사례다. 문제는 공격을 받은 대기업, 국가기관 등이 그들의 억지 주장을 받아주고, 정치권마저 안티 페미니즘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페미니즘에 대한 낙인이 여성의 삶을 억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페미니즘은 문제 사상’이란 인식이 퍼지면서 여성들이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는 의미다. 진씨는 “페미 공격은 안산 선수처럼 유명한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폭력이 아니다”라며 “저도 학교에서 페미니스트란 것을 밝혔다가 입방아에 올라야 했다. ‘페미 논란’이라고들 표현하는데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건 논란이 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한국 사회의 교육 시스템을 되돌아봐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그는 “안티 페미니즘을 외치려면 최소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 현재는 피상적인 꼬투리를 하나 잡고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두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10대에도, 60대에도 한국 여성의 삶은 차별적이고 녹록지 않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젠더 미디어 <슬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는?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는?
10대 페미니스트 진가은(진)=중학교 3학년 때 책 <82년생 김지영>을 읽었어요. 엄마의 삶이 떠올라 많이 공감하면서 봤는데요, 남성들은 페미니즘 책이라면서 비판하더라고요. ‘페미니즘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남성들이 반발할까’란 궁금증이 생겨 정의를 찾아봤어요. 그때 페미니즘이 성평등 운동이란 걸 알게 됐어요. 주변에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바로잡으려면 저부터 페미니즘을 공부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지난해 청소년페미니스트네트워크 위티에 가입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60대 페미니스트 김영옥(김)=10대 때부터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다니. 정말 부럽네요. 제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페미니즘이란 용어 자체를 접할 기회가 없었거든요. 유학한 뒤 한국에 재정착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행복하게도 페미니스트들을 만났고, 여성의 삶을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는 굉장히 소중한 감각을 배우게 됐죠.
게티이미지뱅크
-여성들이 생애 전체에서 성차별 경험을 하곤 한다. 각자 기억하는 생애 첫 성차별은 무엇인가?김=여대에 다니는 내내 남자 교수님들에게 들은 말이 있어요. “내가 여대에서 강의하는 것은 조로하는 일이야”라고. 여대에 다니기 때문에 기가 빨려서 빨리 늙는다는 의미였어요. 어떤 교수님은 교문에 들어설 때부터 온몸이 후끈해진다는 말까지 아무렇지 않게 하셨죠. 정식으로 페미니즘 교육을 받지 못했을 때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굉장한 모멸감을 느꼈어요.진=제 친구가 스포츠 머리 모양에 가까운 짧은 숏컷을 하고 학교에 온 적이 있어요. 교문에서부터 붙잡혔죠. 선생님은 “남자도 아니고 보기 안 좋다. 혐오감을 일으킬 수 있다”면서 벌점을 주셨어요. 여자도 본인이 원하면 짧은 머리 모양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황당하게도 친구는 머리가 길 때까지 이 선생님, 저 선생님에게 여러번 벌점을 받아야 했어요.-세대마다 성차별 경험이 다를 것으로 보인다. 10대여서, 60대여서 일상적으로 겪는 성차별엔 어떤 것이 있었나?진=최근 겪은 일인데 졸업사진을 찍을 때였어요. 친구들은 졸업사진에 예쁘게 나오고 싶은 마음에 대부분 화장을 했어요. 저는 화장을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어서 평소 모습 그대로 있었죠. 그런데 한 선생님이 저를 지목해서 “자신 있나 봐? 아니, 화장을 안 해?”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말에 남자애들은 빵 터지고, 선생님 본인도 재밌는 농담이라도 한 것처럼 웃었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 불쾌했어요. 화장한 여자애들도 기분이 안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 자체에 ‘여자는 화장을 하고 꾸미는 게 당연하다’는 성차별적 인식이 담겨 있는 거니까요.김=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60대로 살아가는 건 유쾌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한국 사회가 노년 여성의 사회적 가치를 고민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거든요. 가령 여성가족부 폐지론이 나와도 과거 여가부 탄생에 일조하고, 그 맥락을 아는 지금의 노년 여성에겐 아무도 질문하지 않아요. 언론이 조명하는 노년 여성은 ‘근육질 할머니’ 정도죠. 이런 상황에서 젊은 여성들이 노년 여성을 롤모델로 삼을 수 있을까요? (가부장제 사회에서) 다른 세계관, 다른 인식론으로 답하려 애써온 노년 여성의 생애 여정에 한국 사회는 무관심하다는 것. 이게 저한테는 매우 큰 성차별이에요.-요즘 한국 사회에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백래시가 거세다. 지금, 여기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며 어떤 고민과 어려움을 겪고 있나?진=학교에서 발표 시간에 페미니스트란 걸 밝힌 적이 있어요. 남자애들은 “너 메갈이냐,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수군댔죠. 충격적인 건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이에요. 제 발표를 들은 영어 선생님은 생활기록부에 ‘여성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단체에서 활동함’이라고 적으셨어요. 제가 강력하게 수정 요청을 한 뒤에야 ‘성평등 운동 단체에서 활동함’으로 바꿔주셨죠. 그런데 그다음엔 담임 선생님이 저를 호출하셨어요. 생기부에서 페미니즘 단체 활동 내용은 빼는 게 좋겠다면서요. 선생님은 “대학교에는 남자 교수가 대부분인데 분명히 이걸 보면 너에게 선입견을 가질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페미니스트라고 밝혔다가 2중, 3중으로 지적을 당하니 저도 모르게 자기 검열을 하게 되더라고요.김=저 같은 사람도 부지불식간에 자기 검열을 하는 스스로를 맞닥뜨릴 때가 있어요. 굉장히 기분 안 좋습니다. 제가 저한테 들킨 거예요. 그러면 나중에 혼자 있을 때 ‘아직도 그거밖에 안 돼?’라며 자책하게 되죠.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건 끊임없는 갈등과 원하지 않는 자기 분열에 빠지는 일이기도 해요. 그럼에도 가은씨에게 꼭 말해주고 싶어요. 페미니스트라서 더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요.-10대 페미니스트에게 또는 60대 페미니스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진=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많은 목소리를 내주셨기 때문에 저희 10대 페미니스트들이 좀 더 편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진심으로 감사하고, 기억하겠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어요.김=페미니스트로 살면서 지치거나 힘들 때 주저앉아 울지 말고 늘 뒷배가 되어주고 있는 할머니들을 쳐다보세요.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007597.html#csidxefdaa8f37c0a705b7137489349a8ae5
2020 도쿄올림픽에서 양궁 3관왕을 차지한 안산. 도쿄/연합뉴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연구활동가
한겨레 2021년 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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