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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유치원·군대 그리고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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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12-13 15:45 조회17,1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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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말이 있다. 유치원 이후에 배우는 것은 실은 유치원에서 이미 배운 것을 되풀이하는 과정이며, 산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유치원에서 배운 걸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이란 뜻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치원 이후에 배움이 멈춘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며, 모든 사람이 유치원을 다녀야 한다는 말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같은 제목으로 출간된 책에 따르면 유치원 나이에 이미 배웠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가르침 가운데는 ‘무엇이든지 나눠 가져라’ ‘남을 때리지 마라’ ‘네가 어지럽힌 것은 네가 깨끗이 치워라’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마라’ ‘남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때는 미안하다고 말하라’와 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다. ‘잘 사는 인생’이란 사람이 사는 데 기초가 되는 이런 내용을 어릴 때 잘 배우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의미를 새로 해석하고 실천하는 삶이다.

이처럼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인생의 기본은 이미 닦은 거라고 보면 과연 그러고도 대부분 10년 이상, 길게는 20년 이상의 세월을 학교에서 보내는 사람들이 그후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가 어렸을 때는 대체로 인성발달에 신경을 쓰던 부모들이 점차 전인교육을 포기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이라고 한다. 초등학생 중 절반에 이른다는 ‘수포자(수학포기자)’가 10살 때부터 나온다고 하니, 그 무렵을 지나면서부터 부모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딱히 잘하지 않아도 예체능을 포함해 골고루 가르치던 부모들조차 전공으로 키울 과목이나 자기소개서에 도움이 될 만한 활동이 아니면 시키지 않는다. 눈치껏 사회가 요구할 것 같은 기준들을 추측하고 따라하면서 소위 스펙을 쌓으려고 전력을 다하는 경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결국 그 긴 교육기간을 거치면서 학교에서 배우는 건 결코 공부가 아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온다고 하니 불안한 부모들은 앞으로 아이들에게 뭘 가르쳐야 하느냐고들 묻지만, 사실 그러한 질문은 핵심을 비켜나 있다. 현재 교육의 핵심은 교육내용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내용이 아무리 바뀐다고 해도 학생들은 학교를 거치면서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각자도생으로 아등바등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불합리한 제도라도 순응해야 한다는 냉소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군대를 갔다 와야 사람 된다고들 할 때, 우리는 그것이 인격적 성숙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꿇으라면 꿇어야 하는 세상 질서에 대한 배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금 세상에서 학교가 가르치는 것은 군대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입시제도만 가지고 왈가왈부하기 전에 유치원에서 배웠던 기본을 잃지 않고도 어른이 될 수 있는 세상을 목표로 두고 교육개혁을 논할 필요가 있다. 일머리도 없고 기본 예의도 모른다며 젊은 세대를 탓하기 전에 과연 학교 교육이 그런 덕성을 갖춘 인간을 기르는 걸 목표로 하기나 했었는지, 거꾸로 그런 덕성만으로는 세상을 살 수 없다며 유치원에서 배운 것은 잊으라고 학생들을 을러대고 몰아댔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농민신문 2019년 11월27일

원문보기 https://www.nongmin.com/opinion/OPP/SWE/FRE/317443/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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