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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남의 살 먹는자의 도리와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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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03-05 15:36 조회14,5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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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위기경보가 ‘경계’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됐다.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한국인, 좀더 정확하게는 한국을 경유해서 오는 사람들의 입국을 금지하는 나라들도 늘었다. 또 입국 후 관리를 시행하거나, 방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국가로 한국을 지정하는 나라들도 늘고 있다. 불과 얼마 전 중국을 대상으로 했던 모든 조치들이 한국으로 확대되는 중이니, 역시 한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려운 것이 사람의 일인 모양이다. 어느새 내가 쏜 화살이 내게 돌아오는 형국이다. 이왕 지나간 일을 반성하는 김에 한가지 다시 생각해봤으면 하는 것은 코로나19 사태 확산 초기에 중국의 음식문화에 쏟아졌던 비난이다.

박쥐가 인간과 동물 사이의 감염을 매개하는 숙주로 알려지면서 박쥐를 먹는 중국인들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이후 바이러스의 유전자검사를 해보니 아마도 몸에 좋다고 알려진 천산갑이 매개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하지만 천산갑 역시 멸종위기의 동물이라 중국인에 대한 비난은 그치지 않았고, 곧 한국 내 중국인들에게로까지 이어졌다. 지금의 코로나19와는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대림동 중국인거리의 위생 상태며 남다른 식문화가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사실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더라도 야생동물과 멸종동물을 가리지 않고 먹어대며 개발을 명분으로 숲과 강,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인간의 행위들은 더이상 계속되면 안되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특정한 지역을 지목해서 비난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나는 떳떳하다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야만적인 식문화와 나는 별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허나 요즘 한창 유행하는 크릴새우에서 뽑아낸 기름이 홈쇼핑에서 인기를 끄는 걸 보면 세상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혈중 콜레스테롤을 줄여주고 중성지방을 녹여내며 뱃살을 빼준다는 효능을 비롯해 거의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진 크릴오일은 일반적인 의미의 혐오식품은 아니며, 먹으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개체수가 20% 정도만 남았다는 크릴새우는 사실 고래·물개·펭귄들이 새끼 번식과 생육에 꼭 필요로 하는 먹이다. 그나마 남은 크릴새우를 인간이 싹쓸이하면서 기후온난화로 영향을 받고 있는 남극의 동물들은 멸종위기에 몰리고 있다. 박쥐 먹는 사람만 비난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난해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올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이런 전염병 사태를 막고 지구를 구하기 위해 채식을 하자는 이야기가 많다. 귀담아듣고 새겨봐야 할 중요한 제안이다. 하지만 그저 식당에서, 홈쇼핑에서 채식을 주문하는 생활의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먹기 위해서는 남의 수고로움에 빚지게 되며 많은 경우 남의 살을 먹게 되는 만큼 먹는 자의 도리를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몸에 좋다고 먹는 많은 것들은 박쥐탕과 같이 낯선 모습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유리병에 약처럼 담겨서 오거나, 보기 좋은 한 접시 요리로 오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농민신문 2020년 2월26일

원문보기 : https://www.nongmin.com/opinion/OPP/SWE/FRE/320004/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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